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랜 분열기로 꼽히는 춘추전국시대. 그중에서 오나라와 월나라의 대립, 이른바 ‘오월쟁패’는 한국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래 오나라는 월나라보다 훨씬 강했다. 그런데도 오나라는 월나라의 공격을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간신 중의 간신, 이른바 ‘국가 간신’(국간)인 백비라는 인물 탓이다.
일찍이 오나라 6대 왕 합려는 인재를 중용했다. 그 중 초나라 출신의 재략가 오자서와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가 오나라 군대의 부흥을 이끌었다. 하지만 합려는 아첨에 약했다. 시대의 간신으로 꼽히는 백비를 최측근에 뒀다. 백비의 간교함을 간파한 오자서와 손무가 합려에게 수 차례나 백비를 제거하라고 간청했지만, 그럴수록 합려는 이상하리만큼 백비를 신임했다.
백비는 급기야 월나라에게 오나라의 정보를 팔아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아 챙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왕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누구도 백비를 건드릴 생각조차 못했다.
기원전 496년. 오나라 왕 합려는 10년전 월나라에게 침략 당한 원한을 갚기 위해 월나라를 공격한다. 그러나 월나라 장군 범려의 책략에 휘말려 대패하고, 합려 자신도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끝내 죽는다. 합려는 죽기 직전 아들 부차에게 말한다. “월나라 왕 구천이 나를 죽였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라.” 부차는 왕이 됐지만 가시가 많은 장작에서 자며 부친의 원수에 이를 갈았다. 바야흐로 ‘와신’(장작에 누움)의 세월이었다.
2년이 흐른 기원전 494년. 부차에게 복수의 기회가 온다.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가 군사력을 더 키우기 전에 오나라를 함락하겠다는 생각으로 쳐들어왔다. 하지만 승기는 되레 오나라 왕 부차가 잡았다. 구천은 소흥의 회계산까지 쫓겨갔다. 사느냐 죽느냐의 위기였다. 이 때 월나라 참모들이 수를 냈다. 백비에게 뇌물과 미인들을 상납하고, 백비가 구천의 구명 운동을 하게 한 것이다.
백비는 부차에게 “이미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에게 신하의 의를 다하기로 했다”며 “굳이 죽일 필요까진 없다”고 부추겼다. 부차는 백비의 간언을 받아들였다. 월나라 왕 구천은 부차에게 철저히 충성하는 것처럼 위장하며 환심을 샀다. 구천은 3년 수모 끝에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되겠다”고 맹세한 후에야 월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귀향한 구천도 복수의 칼을 갈았다. 잠자리 옆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누울 때마다 쓴 쓸개를 핥았다. 오나라에서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바야흐로 ‘상담’(쓸개를 핥음)의 시간이었다.
구천은 20년 간 오나라의 감시를 피해 국력을 키웠다. 오나라 오자서는 월나라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해선 안된다고 부차에게 간청했다. 하지만 되레 백비의 모함에 빠져 스스로 자결해야 했다. 눈에 가시 같던 오자서까지 죽자 백비의 간계는 하늘을 찔렀다. 백비의 아첨으로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소대 궁궐을 짓는가 하면 주변국과 잦은 전쟁으로 오나라 국력은 갈수록 쇠퇴했다. 그럴수록 간신 백비의 곳간에는 금은보화가 넘쳐났다.
기원전 473년. 20년간 상담의 세월을 보낸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로 쳐들어왔다. 이미 간신 백비가 국력을 다 흔든 상태여서 부차는 월나라에 속수무책으로 패했다. 부차는 생포된 뒤에야 오자서와 손무의 진언을 듣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부차는 자결했다. ‘국간’ 백비 때문에 오나라는 사라졌다. 백비는 자신의 공으로 월나라가 오나라를 함락했으므로 당연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또한 구천의 칼에 죽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와신상담, 그 인고의 세월도 어쩌지 못한 간신의 득세가 지금 한국 땅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어디 최순실 뿐이랴. 백비 같은 간신들은 국가 조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당은 물론 기업이나 이익단체 등 어떤 조직에서나 조직을 좀 먹고 있다. 베이징의 한국 기업조차 예외는 아니다.
모든 조직의 흥망성쇠는 곧 간신의 득세를 얼마나 잘 차단하느냐에 있다. 그렇지 못하면 간신이 세력을 이루고, 대를 잇는 불행을 조직이 짊어져야 한다. 최순실 사건의 교훈은 간신을 막는 장치들을 어떻게 명문화하느냐에 있다. 역사는 반복되더라도, 국간만은 되풀이되선 안된다.
베이징(중국)=원종태 베이징 특파원 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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