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분수대] 인생은 B와 D 사이

바람아님 2016. 12. 30. 23:36
[중앙일보] 입력 2016.12.29 18:23
전수진 정치부 기자

전수진
정치부 기자


“사랑하긴 어렵고, 증오만이 넘쳐난다. 희망에 매달려 본다. 희망이라 할 만한 건 없는데도.” 이젠 이름 앞에 ‘고(故)’를 붙여야 하는 가수 조지 마이클이 남긴 노래 ‘시간을 위해 기도하다(Praying for Time)’의 가사 일부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53세로 영면한 그는 생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냥해지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생각하며 이 곡을 썼다”고 했다. 이 노래가 2016년 잔인한 연말을 보내는 우리에게도 울림이 있다고 느껴지는 건 지나친 감상일까.

생소했던 ‘국정 농단’이란 단어가 일상어가 되고, 분노의 촛불이 10주 차에 접어드는 지금, 타인을 위한 상냥함은 사치에 가깝다. 사랑보단 증오가, 희망보다는 절망이 지배한 2016년은 유난히도 길었다. 그 2016년도 내일이면 저문다. 하지만 달력 한 장 넘긴다고 희망찬 새해가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날까. 그런 기대를 할 만큼 우린 이제 순진할 수 없다.

글의 제목은 프랑스 작가 겸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1905~80)의 말에서 빌려왔다. 그는 말했다. “인생은 B와 D 사이에 있는 C다.” 삶은 곧 출생(birth)과 사망(death) 사이의 선택(choice)으로 이뤄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는 또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만든 결과물이다”는 말도 남겼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우리 스스로가 한 선택의 결과다. 내일 저녁 청와대 관저에서 아마도 홀로 묵은 해를 보낼 직무정지 대통령 역시 우리 손으로 뽑았다. 지난 2012년 12월 19일 투표율 75.84%를 기록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51.6%였다는 팩트를 잊지 말자. 그는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사상 처음으로 과반 득표를 기록하며 청와대에 입성했고, 4년이 지난 뒤, 대한민국 역대 최저 지지율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지난 대선에서 나는 기호 1번을 찍지 않았으니 이번 사태는 내 탓이 아니며, 그래서 나만은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나. 대한민국의 선택은 대한민국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남 탓을 하며 손가락질만 하는 건 솔직히, 비겁하다.

다행히 기회는 다시 온다. 내년 치러질 대선에선 정신 바짝 차리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휩쓸리지도 말고, 귀찮아하지도 말자. 타인에게 상냥할 수 있고 사랑이 증오를 이기는 세상은 우리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계산기 두드리기 바쁜 정치권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유권자인 우리 몫이다. 2017년엔 희망을 선택하자.

전수진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