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국제부장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그간 많았다. 아시아에는 전 세계 인구의 60%가 살고,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 덕분에 아시아 파워가 점점 커져 결국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제국주의 침탈기지로 여겨졌던 아시아가 역사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수십억 아시아인들의 가슴이 설?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시대 개막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아시아의 세기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의 보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아시아 전문가 마이클 오슬린은 신간 ‘아시아 세기의 종언(The End of the Asian Century)’에서 “중국의 경제 성장세는 꺾였고 과속성장의 후유증이 본격화하고 있어 더 이상의 성장 기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세계 경제의 동력이 아니라 부담이라는 게 핵심 논지다.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6.7%였고, 올해도 6%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제성장이 지체하면서 중국은 이미 실업과 사회불안이 만연한 상태다. 오슬린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한 해 18만 건의 소요가 발생할 정도로 사회 전반이 혼란스러운 상태다. 그 주장의 밑바닥에는 21세기는 중국의 시대가 될 수 없고 세계의 중심은 여전히 미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이미 2015년 ‘미국의 귀환’이라는 주제의 플레넘을 통해 미국이 셰일에너지개발 등을 통해 도약의 길을 마련했다고 평가하면서 21세기에도 미국의 슈퍼파워 지위는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21세기가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은 중국경제가 지속 성장을 거듭해 2030년쯤에는 미국의 규모를 넘어서며 슈퍼파워로 부상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백일몽으로 끝나는 기류가 뚜렷해지자 트럼프가 자신 있게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고 나온 것이다. 트럼프 진영의 핵심 경제 참모들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이라고 비난하면서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도 중국의 성장세가 꺾였다는 판단하에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트럼프의 압박에 순응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전무하다. 올가을 공산당대회를 앞둔 시 주석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할 경우 권력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일단 강력히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올해 미·중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지도부는 심각해지는 내부 불만을 바깥으로 돌리기 위해 대외적 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남중국해 갈등을 확대시키는 것은 그런 내부적 기류와 무관치 않다. 미국의 컨설팅회사 유라시아 그룹도 미·중 충돌이 올해 발생할 가장 위험한 리스크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위기시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간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국내 진보진영은 ‘중국 = 떠오르는 해, 미국 = 지는 해’로 규정해왔다. 여기엔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을 중심에 놓고 외교안보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드 문제에서 중국의 눈치를 보며, 중국에 거슬리게 행동하지 않으려는 것은 바로 부상하는 권력을 존중해야 한다는 심리 때문이다. 그렇지만 버락 오바마 시대가 저물며 이기는 쪽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중국을 중심으로 국가전략을 짜는 것은 난센스다.
한·미 동맹은 여전히 상수가 돼야 한다. 예측불가형 지도자 트럼프가 취임해도 미국은 미국이다. 미국엔 중국엔 없는 언론 자유와 시민사회, 의회가 살아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돌출적이라 해도 그 한 사람 때문에 미국이 변화하지는 않는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지난 2013년 방한 때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지 말라”고 발언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친중정책에 대해 우회적으로 경고한 것인데, 이제 그의 충고를 다시 새길 때가 됐다. 전세계적으로 중국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비관론으로 바뀌면서 아시아 세기에 대한 장밋빛 환상도 저물고 있다. 이제 우리도 막연한 대중낙관론을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트럼프시대 출범을 앞두고 세상이 시끄러워도 베팅할 곳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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