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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떠나는 리퍼트

바람아님 2017. 1. 21. 12:26
(조선일보 2017.01.21 이하원 논설위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는 한미(韓美) 외교가에선 '기록의 사나이'로 불린다. 
2014년 부임 당시 41세. 역대 최연소 미국 대사였다. 아들과 딸을 모두 한국에서 낳았다. 
자녀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테러를 당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2015년 3월 이후 오른쪽 얼굴에 길이 11㎝ 흉터를 지닌 채 살고 있다. 

▶한미 관계의 오점(汚點)으로 남을 뻔했던 '미 대사 테러' 사건을 리퍼트는 오히려 '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한국인이 사건 현장에서 테러범을 제압했고, 한국 경찰이 신속하게 나를 이송했으며, 한국 의사들이 나를 치료했다.
한미 동맹의 훌륭한 예를 보여줬다." 그가 테러를 당한 지 한 달 반 만에 경주 불국사를 방문했다. 
초등학생까지 그에게 사진을 찍자며 몰려들어 걸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만물상] 떠나는 리퍼트

▶두산 베어스 팬인 리퍼트와 2016년 7월 잠실 구장을 찾은 일이 있다. 
야구장 아나운서가 아들 세준을 안고 시구(始球)하러 나온 그를 소개했다.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미8군 군악대는 애국가를 연주했다. 미군과 한국 관중이 함께 어우러졌다. 
리퍼트는 "이게 바로 한미 동맹이 튼튼하다는 증거 아니겠느냐"며 웃음 지었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최근엔 저녁 식사 후에 우리말로 "2차 가자"고 자연스럽게 말할 정도가 됐다. 

▶리퍼트는 늘 부드럽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대사관 안팎에서 단호한 결정이 필요할 땐 강하게 밀어붙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 7월 한미 양국은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를 발표했다. 
그는 사드를 이렇게 비유했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쓴다. 패트리엇 미사일이 우비라면 사드는 우산이다." 
그저께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NPR)이 그를 인터뷰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해 동맹국이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한 견해를 묻자 잘라 말했다. 
"한국인들은 절대로 무임 승차자(free rider)가 아니다. 한국에 세계 최대 미군 기지를 건설 중인데 한국인들은 
비용 100억달러 중 96%를 부담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인터뷰를 트럼프가 새겨듣기를 바란다. 

▶리퍼트가 2년 3개월 한국 근무를 마치고 어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임 전에 한국 지인들과 여러 차례 식사하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리퍼트는 이런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많은 주한 미 대사가 한국에 진한 애정을 갖고 떠난다. 
한미 동맹이 괜히 최고의 동맹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