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전업체들이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갇혔다는 얘기가 나온 게 딱 10년 전이다. 나쓰노 다케시 게이오대 교수는 소니, 파나소닉 같은 초일류기업들이 휴대폰이나 가전시장에서 쇠락한 원인을 따져보니 독자노선을 걷다 경쟁력이 약화된 데 따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나쓰노는 인지부조화를 들어 이를 설명했다. 인지부조화는 두 가지 생각이나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세계표준보다 국내시장을 선택했다. 도전보다는 안주를 택한 셈이다. 결과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이후 갈라파고스 현상은 세계시장의 흐름에 밀려나면서 쇠퇴한 현상을 가리키는 일반용어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미국발 보호무역주의가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 분석이 한창이다. 내수보다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이 직격탄을 맞을 것임은 자명하다. 따지고 보면 갈라파고스 현상은 더 이상 일본만의 얘기가 아니다. 되돌아보자. 정부나 산업계에 수출다변화는 늘 최고 화두였다. 신흥시장 진출 우대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니 하는 것은 그런 일환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의 주요수출국은 중국, 미국 위주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의존도는 더 커졌다. 수출품목도 반도체, 자동차, 휴대전화 등 10년째 특정분야에 집중됐다. 한마디로 대기업 위주, 기존 교역국 위주, 중국을 경유한 중간재 수출 위주라는 공식이 변함없었다. 안주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눈앞의 떡이 커 보이고 단기실적이 중요시되는 상황에서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는 사이 추격자는 턱밑까지 쫓아왔다.
정부는 구태의연했다. 유일호 부총리는 며칠 전 뉴욕에서 한국 경제설명회를 가졌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차관은 트럼피즘(트럼프의 포퓰리즘 공약)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에 특임대사 파견 등 외교력과 민관합동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와 관계만 좋으면 불을 끌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한국에 변화의 에너지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갈라파고스화하고 있는 한국을 어떻게 리셋할지 고민해야 할 이들의 행동치고는 너무 단수가 낮다.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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