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1.25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해변에 누워 있을 때보다 그곳에 가는 과정 떠올릴 때 인간은 더 큰 행복감 느껴
靜보다 動이 긍정심 일으키니 "더 많이 움직이라"는 설날 덕담 나누길
새해 첫 달의 주 업무 중 하나는 사람들과 덕담을 나누며 각자의 계획을 다지는 것이다.
새해 덕담에 담긴 내용의 상당 부분은 한국인이 평소에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과 중복된다.
건강과 경제적 풍요에 대한 소망들. 사실 행복이 별것 아니라 불편 없을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잘 먹고 장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풍족하지 못했던 시대를 살아온 많은 한국인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행복관이다.
하지만 무엇이 행복인가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한다.
아랫목 이불에 몸을 녹이는 것이 겨울 밤에는 행복이지만, 여름 밤에는 고문에 더 가깝다.
결핍과 불확실성이 큰 환경은 먼 이상보다는 가까운 현실에, 도전이나 변화보다는 안정에 눈을 두게 만든다.
우리가 이토록 현실적이고 안정지향적인 행복관을 갖게 된 이유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배고픔이나 단명(短命)을 걱정하기보다는 이제는 비만과 고령화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세상이다.
그저 큰 부족함 없이 편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소극적인 생각 또한 개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행복의 핵심은 긍정적인 감정(즐거움, 기쁨 등)을 자주 경험하는 것이다.
세상을 다 가졌다고 해도 일상에 기쁨이 없다면 행복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 감정들은 정체(停滯)되거나 안정된 상태보다는
어떤 자극을 향해 움직이는 상태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많은 연구가 보여주고 있다.
가령, 멋진 해변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정적인 장면을 상상할 때보다 그 아름다운 해변으로 일광욕하러 가는 과정을
연상할 때 사람들은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정서(Emotion)'라는 학술지에 최근 실린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외국 건물들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며 그들의 긍정 정서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측정했다.
세 조건이 있었다.
―동영상을 앉아서 혹은 그냥 서서 보는 경우, 그리고 러닝머신 위에서 가볍게 걸으며 보는 조건이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의 긍정 정서는 몸을 움직인 러닝머신 조건에서만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물론 운동의 긍정적 효과를 주장한 연구들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이전 연구에서는 그것이 운동의 고유 효과인지 알 수 없었다.
가령, 한 달 동안 헬스장에 다닌 사람들이 같은 기간 잠을 잔 사람들보다
행복해졌다고 하자. 올라간 행복이 운동 때문일 수도 있지만,
헬스장에서 만든 새 친구들 때문일 수도 있고, 흘린 땀이 억울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방법론적 약점들을 제거한 이 최근 실험은 행복에 관한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 준다.
긍정 정서는 본질적으로 정(靜)이 아닌 동(動)과 겹쳐 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 덕분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덜 움직이며 산다.
휴대폰만 손에 쥐면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부엌 식탁에 앉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편리함 때문에 더 행복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고단하게 움직이지 않는 우아한 인생은 소수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유복하고 고령화될수록 어디론가 달려가야 할
필요나 이유가 없는 시간들은 더욱 많아지고,
이 정체된 시간들은 점점 행복이 아닌 권태나 무의미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새해 덕담도 필요하다.
―사람이든 일이든, 달려가고 싶은 곳이 더욱 많아지는 한 해가 되시길!
서은국 교수의 [행복산책] 목차 행복해지기 위해 시험보다 중요한 것들 (2017.11.20) 긴 휴가, 준비되셨나요?(2017.09.25) "소셜미디어 속 멋진 인생에 흔들리지 마라"(2017.07.24) 축구든 인생이든 즐겨라 (2017.06.05) 물건보다 경험을 사고, 혼자 쓰기보다 함께 즐겨야 (2017.04.24) 행복,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몫 (조선일보 2017.03.13) 설날 최고의 덕담, "더 많이 움직이세요"(조선일보 2017.01.25) 마음의 벽, 조금만 낮춘다면(조선일보 2016.10.31) 주고, 받고, 갚는 인생(조선일보 2016.09.19) 금메달의 기쁨? 석 달이면 녹는 아이스크림(조선일보 2016.08.1) 칭찬받고 추는 춤, 좋아해서 추는 춤(조선일보2016.06.29)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조선일보2016.05.16) '배부른 돼지'에게도 잔치는 필요하다(조선일보 2016. 04. 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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