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 萬事法通에 추락하는 도덕의식

바람아님 2017. 2. 5. 14:53

(조선일보 2016.11.30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정 농단 세력, 法治 교묘히 활용해 범죄 책임과 처벌 면하려 애써 

선량한 국민 법의식 오염시킬까 우려… 돈 있고 힘 있고 배운 자들의 

도덕적 불감증과 양심의 마비부터 한국 사회가 조속히 해결해야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탄핵이든 하야든 또는 다른 대안이든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압도적 다수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잃은 박근혜 정부가 임기 말까지 온전하게 존속하리라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 급박하게 전개된 상황을 볼 때 어떤 형태로든 정국 수습책에 대한민국호(號)의 장래가 걸린 

위중한 국면이다. 그렇지만 (당장의 정치적 혼란 수습을 넘어서) 국정 농단을 주도하고 비호하는 세력이 

현 시국에서 보여주는 도덕적 부패상 역시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심각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이 관여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우리는 현직 검찰과 검찰 출신 인사들이 수행하는 '흥미로운 전투'를 목격하고 있다. 

특별수사본부의 현직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정 농단의 주역 역시 상당수가 검찰 출신이거나 검찰 출신 인사들을 

방패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망을 좁혀오는 검찰에 맞서 국정 농단 세력은 '모른다' '몰랐다' '만난 적 없다' '기억이 없다' '사실이 아니다' 등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자신들의 핵심적 범죄(피의) 사실을 시종일관 부인하고 있다. 

나아가 어느 정도 사실이 파악된 혐의에 대해서도 교묘한 논변을 통해 그 범죄성을 부정하느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 결과 한편에서는 증거 색출과 확보에 고심하고 다른 편에서는 증거인멸과 은폐로 맞서며, 

한편에서는 적절한 법리 구성을 통한 '법망 조이기'를 시도하고 다른 편에서는 교묘한 법리를 동원한 '법망 피하기'로 

대처하는 형태로 검투사들의 드잡이가 진행되고 있다. 언론의 보도 태도 역시 이러한 사태를 '창과 방패의 싸움' 

또는 '현직 검사들과 전직(선배) 검사들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그 흥미진진한(?) 게임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귀추와 상관없이 이를 지켜보는 필자의 심정은 결코 편하지 않다. 

국정 농단 세력이 법치를 교묘하게 활용해 자신들의 책임과 처벌을 면하고자 하는 것만큼이나 

그들의 윤리적 타락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순실 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주요 정치인·관료·기업인 등 한국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범죄(혐의) 사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윤리 의식 실종에 참담한 마음뿐이다. 나아가 그들의 파렴치한 행태가 선량한 일반 국민의 법의식은 

물론 도덕의식마저 오염시키고 있지 않나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주 인용되는 논어 구절에서 공자는 이미 오래전에 법치의 폐해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인도하기를 법으로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형벌로써 한다면 

백성이 형벌을 면하기는 하겠지만 수치심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위정자에 해당하는 지도층이 죄를 범한 후에도 형벌을 면하는 데 급급하고 수치심마저 느끼지 않는다면 

일반 국민을 어떻게 대할 수 있겠는가.


정치학 교과서에서 게임 이론의 백미로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 이론 역시 현대 민주국가에서 법치가 초래하는 도덕 불감증을 

여실히 증언한다. 그 이론은 범죄를 함께 저지른 공범 두 명이 범죄에 대해 도덕적 반성을 하기는커녕 정교한 법률 게임 

내에서 각자 범죄 사실에 대한 '자백'과 '부인'이 초래할 손익을 신중하게 저울질하면서 어떻게 하면 처벌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 하는 '합리적' 선택에 몰두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이론은 '범죄를 저질렀다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 반성과 함께 범죄 사실을 고백하고 나아가 그에 합당한 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선량한 윤리 의식의 실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죄수의 딜레마' 이론이야말로 현대 서구 사회에서 법치주의의 현실적 해악을 학문적으로 재생산하는 극명한 실례인 것이다.


국정 농단의 주역들 역시 죄를 짓더라도 혐의를 남기지 않고, 혐의가 잡히더라도 증거를 숨기려고 애쓰며, 

증거가 나오더라도 교묘한 법리 구성을 통해 법망을 피하려고 고심하고 있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힘 있고 돈 있고 배운 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법치를 악용하면서 처벌만 피하면 

만사법통(萬事法通)이고, 자신들의 도덕적 타락과 양심의 마비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도덕 불감증이 두렵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사회의 윤리적 기강에 미칠 해악이 무섭다.

평소 그들이 사회의 존경을 받는 지도급 엘리트로 알려져 있었다면 더더욱 가공(可恐)스럽다.



같이 읽을 거리 - 원인 분석


[동아광장/최진석] 지식인의 몰락 (발췌)(동아일보 2016-12-03)


지식의 건립은 병을 치료하는 윤리적 행위의 결과이다. 

이런 과정에 참여하는 지식인은 당연히 공적이고 윤리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직접 실현하지 않고, 실현된 결과들을 수용만 하는 지식인들에게는 

공적이고 윤리적인 훈련을 받을 기회가 사라진다. 

생각하지는 않은 채 다른 사람이 한 생각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만 하고, 

문제를 발견하려 덤비지는 않은 채 문제를 해결한 결과들만 수용하는 방식으로 성장한 지식인은 윤리적일 수 없다.

저항하는 힘이 있을 수 없다. 자존감도 없고 자부심도 없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찾는 탐욕에 지배당한다.


지금 혼란은 지식인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업보를 겪는 일인지도 모른다. 

잘못 성장한 지식인들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 

그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한, 촛불의 희망은 달성되기 어렵다. 

세대교체가 필요하고, 혁명이 필요한 이유이다. 

교육의 본바탕을 회복하는 일이 절실하다.



[동아광장/최진석] 지식인의 몰락

(동아일보 2016-12-03)을 다시 읽으면서, 


지식과 지식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 사회에 윤리적으로 취약한 지식인 엘리트들을 수 없이 보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서 인지한다.

그나 저나 이 것이 현실이니 어쩔 것인가?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