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 맥락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중시'일까
'달라진 미국'의 북핵 대응에 우리의 대비책은 무엇인가
지난 주말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서울을 방문했다. 그의 첫 해외 방문지가 서울이었다는 점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 방향에 대한 의구심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었다. 세계 도처의 수많은 현안 중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매티스 장관이 서울에 있을 때 미국의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은 새 정부의 대북 정책 리뷰를 지시했다.
이러한 긍정적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착시(錯視) 현상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의지는 여전한 것 같지만, 미국의 생각과 국제 정세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담당해왔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리더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가치들보다는 미국 우선주의와 경제 이익을 앞세우면서 국제 다자 협력의 틀을 무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유럽 연대의 틀인 나토를 '낡았다(obsolete)'고 말하며 러시아에 접근하고 있다. 미국 주도 아·태 지역 경제 통합 노력의 상징인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에 이어 이란 핵 협상, 어려운 환경 협상의 결과물인 파리협정도 버릴 것 같다. 가치보다 이익이 앞서고, 과거의 적이 오늘날의 친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중 외교 관계 수립의 기본 전제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협상 카드로 사용할 조짐까지 보여주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이라며 압박하고, 관세 인상으로 나가면 중국도 미국 채권 구매 감소, 중국 내 미국 기업 활동 제재, 관세 인상 등으로 보복하고 나올 것이다. 한편 일본은 미·일 동맹 유지에 사활을 걸고 뛴다. 견고한 미·일 동맹의 기반 위에서 호주·인도·필리핀·러시아 등을 상대로 펼쳐 온 글로벌 외교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동맹이나 미·일 동맹을 급작스레 약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미국 우선주의의 결과로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양자 동맹이 약화된다면 아시아는 상당한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무엇보다 주변국들에 대한 중국의 정치·경제·군사적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여기에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과 핵무장, 군사 대국 가속화로 대응할 것이다. 북한의 핵위협에 직면한 한국은 안보 공백 상태를 국방비 증가와 핵개발로 채우려 할 것이다. 이 같은 악몽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는 분기점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
이상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 환경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해법과 관련하여 최근까지 미국 안에서는 두 가지 방향의 제안이 논의되었다. 그중 하나는 일단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실험의 동결부터 협상하고 비핵화는 그다음 단계로 추진하자는 안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점진적 비핵화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년 말에 나온 외교협회(CFR)의 보고서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의 최근 발언이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핵·미사일 동결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그동안 명시적으로 부정해왔던 북한의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되고, 이는 국제사회에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설령 협상에 성공해서 핵·미사일 동결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그것의 이행 여부를 모니터하기 위해서는 상당 수준의 사찰이 필요한데, 그것을 북한이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방향을 택하든 더욱 강한 경제 제재로 북한을 압박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에는 의견이 대체로 합치한다.
이러한 기존 논의들이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대북 정책 리뷰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 하는 점이 궁금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언가 과거와는 '다른' 해법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 '다름'의 내용이 무엇일까? 한 가지 희망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 성과를 홍보할 외교 사안으로서 북한 문제가 적합하다는 점이다. 다른 국제 분쟁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 착안하여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올인하고, 그 과정에서 그의 장기인 협상 능력까지 발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특히 미국이 중국을 압박할 때 얻고자 하는 목표 중에서 북핵 해결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궁금하다. 대미 무역 흑자 개선,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자제보다 과연 북핵 문제를 더 우선순위에 놓고 있는지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그 같은 미국의 계산 맥락 속에 어떻게 북핵 위협 해소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 구체적 이행 과정에서 우리 입장을 반영시킬 것이냐, 그것이 우리 정부의 과제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前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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