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 소개해 드릴 수목원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경기도 오산시의 물향기수목원입니다. 큰 덩치를 가진 인접 도시에 비해 오산시는 인구 20만의 소규모 도시입니다. 하지만 물향기수목원의 존재는 오산시를 수원시나 화성시 부럽지 않은 생태도시로 만들어줍니다. 경기도립 수목원이라 그 자부심은 한층 더 높습니다.
물향기수목원의 태동은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관리해 온 경기도 임업시험장 부지가 그 모태입니다. 임업시험장은 1970년대 녹화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된 곳으로, 수목원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움직임은 2000년부터 시작해 2005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고는 2006년 어린이날 전날(5월 4일)에 맞춰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개원했습니다.
물향기수목원을 처음 찾는 분들은 ‘물향기’라는 이름을 재미있어 합니다. 그 많은 향기 중 왜 하필 물향기냐, 물에 무슨 향기가 있다는 말이냐 하는 식의 질문을 합니다. 물에서 무슨 향기가 나는지에 대한 답은 일단 글 말미로 미뤄두겠습니다.
그 많은 향기 중 왜 하필 물향기로 지었는가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물향기수목원이 자리한 곳이 수청동(水淸洞)이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라 하여 그런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실제로 이곳에 약수터가 있었고, 수목원 안에서도 음용 가능한 약수가 나옵니다.
경기도 오산시에서 태어나 수청동에서 잠깐 살아보기도 했던 이의 말을 빌리자면 허허벌판 같은 곳이었지만 약수터 물맛은 좋았다고 합니다. 그 약수를 마시던 30년 전만 해도 훗날 자신이 이런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가 될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물향기라는 이름이 단순히 지명에서 유래했다고 보면 오산입니다. 애초부터 생명의 근원인 물을 중시해 조성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19개의 주제원으로 구성된 물향기수목원에는 물을 테마로 한 주제원이 세 군데나 있습니다.
수생식물원, 호습성식물원, 습지생태원이 그것입니다. 이 세 군데 주제원만 돌아봐도 물향기수목원의 절반은 관람한 셈입니다. 그 정도로 세 군데 주제원의 규모가 상당합니다.
그중 수생식물원은 물향기수목원에서 가장 낭만적인 휴식 장소입니다. 해마다 봄이면 수생식물원 주변으로 왕벚나무의 새하얀 꽃이 만발해 그림 같은 경관을 연출합니다. 꽃그늘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있으면 누구나 그 아름다운 풍경화의 주인공이 됩니다.
수생식물원뿐 아니라 주차장 주변으로도 봄이면 온통 벚꽃이 피어 수목원의 봄을 환하게 켭니다. 이때가 물향기수목원의 하이라이트 같은 시기입니다.
왕벚나무는 일본 나무라는 인식이 있지만 실은 한국특산식물입니다. 즉, 일본에는 자생지가 없고 한반도의 남부지방과 한라산에서만 드물게 자라는 우리 나무입니다. 죄는 미워해도 나무는 미워하지 말라는 듯 벚꽃은 매년 새로운 꽃을 활짝 피워냅니다.
호습성식물원은 이름 그대로 습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이곳에는 제비붓꽃, 들통발, 소귀나물, 수련 등등의 수생식물이 구획된 공간 안에 심어졌습니다. 비교적 한적한 장소다 보니 식물도 식물이지만 청딱따구리 같은 조류가 즐겨 찾는 새들의 낙원이 됐습니다.
이곳에는 새박처럼 원래 자라던 게 아닌 식물이 퍼져 자라기도 합니다. 새박은 박과의 한해살이풀이며 하얗고 동그란 열매가 새의 알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충청 이남의 습지 근처 풀밭에서 자라는 식물이므로 경기도에서는 자랄 리가 없습니다. 어떤 식물이 옮겨질 때 묻어 들어온 군식구가 분명합니다.
습지생태원은 더 많은 동식물로 붐비는 곳입니다. 물과 관련된 세 군데의 주제원 중 가장 많은 식물 종수와 개체수를 자랑합니다. 그건 아마도 습지 외에 늪지 비슷한 땅을 품고 있어서 그럴 겁니다.
용버들, 키버들, 갯버들 같은 각종 버드나무 종류를 비롯해 부들, 물질경이, 노랑원추리 같은 수생식물이 목재통행로 주변으로 즐비합니다. 그뿐 아니라 삼지구엽초, 복수초, 앵초, 각시둥굴레, 관중 같은 초본류가 군데군데 심어져 있어서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곳을 멀리서도 빛나게 해주는 건 메타세쿼이아입니다. 메타세쿼이아는 물향기수목원에서 가장 많이 심긴 나무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우뚝우뚝 줄지어 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최고가 습지생태원의 메타세쿼이아입니다. 가을이면 북유럽 아가씨의 머리처럼 검붉게 물든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메타세쿼이아는 인간에 의해 번성하게 된 나무입니다. 화석식물로만 여겼던 나무가 중국의 양쯔강 상류에 실존한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건 1946년의 일입니다. 그 후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미국의 아놀드수목원에 의해 전 세계로 보급됐습니다. 중국 또는 미국의 나무로 여길 수 있겠지만 포항에서도 화석이 발견되었으니 우리 나무라 해도 결코 억지가 아닙니다.
겨울에도 물향기수목원이 심심하지 않을 수 있는 건 물방울온실 덕분입니다. 물을 형상화한 두 개의 물방울 모양으로 온실을 만들어 아열대 식물을 사계절 관람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곳의 많은 식물 중 극락조화는 꼭 한 번 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파초과의 식물답게 넓적한 잎이 싱그러운 극락조화는 꽃이 열대지방에 사는 극락조를 닮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영어 이름이 ‘bird of paradise flower’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꽃의 모양에서 극락조(bird of paradise)를 연상해 지은 이름입니다. 극락이란 즐거움만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물향기수목원도 극락입니다. 슬픈 일 하나 없이 즐거움만 가득하니까요.
물에서 무슨 향기가 나느냐는 질문에 이제 답합니다. 물에서는 생명의 향기가 납니다. 물을 떠나 생명이 살 수 없듯이 그 생명의 기운으로 나무가 자라고 숲을 이루며 종국에 가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물과 나무와 인간에게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곳에서 정유년의 새봄을 맞아보는 건 어떠신지요? 극락정토까지는 아닐지라도 즐거움이 향기롭게 샘솟는 물향기수목원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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