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3.30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週 52시간 넘으면 처벌? 獨은 연간 총근로시간을 규제
주 35시간으로 줄였던 佛은 오히려 청년 실업 25%에 달해
근로시간 좌우하려는 정부, 4차 산업혁명 걸림돌 될 것
지난 27일 국회에서는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는 법안 처리가 불발됐다.
그러나 다음 정권으로 넘겼을 뿐 연내에 마무리한다는 방향을 밝힘으로써 재점화가 예정된 셈이다.
더구나 문재인 후보가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50만개 창출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주요 대선 후보들이
한결같이 근로시간 단축 공약을 내세우고 있어 누가 당선되든 이 이슈는 대선 이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장시간 근로 국가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고,
이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관련 논의가 진행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우려를 넘어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첫째,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고도 단순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근로시간을 줄여도 현재의 근로량이 동일하게 유지돼 신규 채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가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유사한 경험이 있는 서구 선진국 사례를 보면 이런 의도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기업들이 노동 비용 증가를 피하기 위해 노동 강도를
높이고 노동을 기계로 대체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 시장 경직성 때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2000년에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줄이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기업들은 신규 고용을 기피했다. 일단 채용하고 나면 고용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프랑스의 청년실업률은 25%에 달한다.
둘째,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을 초과할 시 사용자를 형사 처벌하겠다는 단호함은
마치 글로벌 경제와 철저하게 괴리된 채 시장 위에 군림하는 정부가 되겠다는 다짐 같다.
근로시간을 엄격히 규제한다고 알려진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 다수 선진국에서조차
주당 근로시간 규제는 이미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 나라들의 근로시간법은 6개월 정도를 기준으로 평균 하루 8시간을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일이 많을 때는 근로시간을 늘렸다가 일이 없을 때 줄이는 방식으로
탄력 운용하는 것이다. 더구나 기업 현장의 노사가 협상을 통해 이 기간을 확대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근로시간 제한을 연간화(年間化·annualize)하는 것도 흔하다.
연간 총근로시간의 한도만 맞추면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근로시간 한도를 어겼을 때에도 처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근로시간이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실제로 해쳤는지를 조사하도록 하고 있다.
개별 기업에 맞도록 탄력성을 보장하지 않고는 시장 변화에 대처할 길이 없다는 인식이 법률에 반영돼 있을 뿐만 아니라
제재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웃지 못할 일은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대로라면 1년 중 일정 기간
주 52시간 근로를 쉽게 초과하곤 하는 독일의 사용자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죄다 형사 처벌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경제와 인간 생활 관계의 복잡성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인간 역사는 생산성과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삶의 질과 여가에 대한 필요가 커지는 과정이었다.
정부가 "소득보다 여가가 중요하다"고 강요한다고 노동 시장 관행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저변에서 소득이 증가하고
선호(選好)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저생산성 근로자와 영세 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여가 생활의 저평가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현재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근로자는 107만명에 달하며, 단축을 강제할 경우 이들의
월 소득은 약 39만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역할은 방향성을 분명히 하되 한 발짝 앞에서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지 독단적 주도가 아니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왼쪽 두번째)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근로시간 단축 관련 중소기업계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이날 근로시간 단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넷째, 이면에 숨은 이슈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
교대제 조정으로 이미 장시간 근로와 상당히 멀어진 대기업 노조에게 이번 이슈는 휴일 근로의 중복 할증,
즉 임금 인상 문제이다. 일자리 나누기라는 외양을 두른 논쟁 속에서 대기업 강성 노조는 사실상 임금 인상을 도모하고 있고,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입법을 위해 중소기업 근로자와 기업주가 생가슴을 앓는 형국이다.
독일 경제와 프랑스 경제의 경로가 크게 갈리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 독일이 하르츠 개혁을 단행해 시장 유연성을
높였지만,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로를 통과시켰다.
당시 양국 정부 정책 결정자들의 인식과 태도의 차이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경각심으로 미래를 준비하느냐,
외부 세계와 격리된 채 시장을 호령하느냐로 요약된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에서 나타난 것처럼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래야 한다고 믿는 정부의 태도는 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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