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군에 입대하게 된다. 당시 미국은 모병제가 아니라 징병제였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시기였다. 소심한 남자는 군 생활을 덜 위험하게 하려는 속셈으로 일본어를 배운다. 해군 일본어 강습소를 거쳐 해병대 통역요원으로 근무한 그는 전쟁이 끝난 뒤 배워 놓은 일본어가 아깝다는 생각에 외교관에 지원한다. 외교관이 되어 도쿄에 부임했지만 내향적이었던 그의 기질은 공직과 맞지 않았다. 그 무렵 남자는 일본문학의 매력에 깊이 빠져 든다. 결국 외교관을 그만 둔 그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 남자가 바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Edward George Seidensticker)다.
1968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옆에 서 있던 인물이다. '설국'을 영어로 번역한 장본인이다. 이 자리에서 야스나리는 "이 노벨문학상의 절반은 사이덴스티커의 몫"이라며 그의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 실제로 상금의 절반을 사이덴스티커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도 후일담으로 남아 있다.
사이덴스티커는 일본어 전문번역가가 된 이후 당시 일본문학의 3대 거장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번역한다. 야스나리의 '설국'을 영역한 건 1956년이었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일을 성사시킨 것이 아니라 미국 출판사가 나선 결과였다. 사이덴스티커가 연결고리가 됐음은 물론이다.
사이덴스티커는 야스나리의 소설 미학이 서양인들에게 신비스러운 체험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했던 것같다. 그는 의역까지 서슴치 않으면서 '설국'의 미학을 서양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사실 당시 일본 내에서는 코스모폴리탄적 매력을 지니고 있었던 미시마 유키오나 실험정신이 강했던 다니자키 준이치로, 역사소설의 대가인 이노우에 야스시가 훨씬 인기가 있었다. 이들에 비해 야스나리는 뭔가 고답적이고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노벨상에 근접한 작품이라는 평도 별로 듣지 못했다. 그런 야스나리의 숨겨진 가치를 찾아낸 것이 바로 사이덴스티커였다. 그는 가장 일본적인 작품인 '설국'이야말로 서양인들의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문학작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직감은 현실이 됐다.
사이덴스티커는 노벨상 이후 삶도 일본문학을 번역하고 연구하는 데 바쳤다.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받은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스탠퍼드·미시간·컬럼비아대학 등에서 일본문학을 강의했고 10년이 넘는 작업 끝에 일본 최고 고전인 '겐지이야기'를 영역한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2007년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일본문학의 세계화에 끼친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는 단순한 번역가가 아니라 일본의 역사와 문화, 습성을 뼛속까지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야스나리의 노벨상 수상은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가 말년에 쓴 책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에는 번역이라는 업에 대한 그의 애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책은 2004년 국내에서도 출간됐다.
일종의 자서전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책에서 그는 "번역이란 뭔가를 끊임없이 내다 버려야 하는 가차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언어구조가 완전히 다른 언어를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에 빠졌었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고백이다.
흥미로운 건 사이덴스티커가 일본의 바로 옆 나라인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에 보면 곳곳에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본 도자기보다 한국 도자기를 더 좋아해서 밀반출까지 무릅쓰고 평생을 소장했다고 고백하는 부분이나 '사상계' 발행인인 장준하 선생을 가리켜 '군자(君子)의 전형'이라고 상찬하는 부분만 봐도 그가 한국에 대해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진 1968년 10월 18일 그가 지리산 노고단을 등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를 배웠다면 어땠을까? 괜한 상상을 해 본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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