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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와 '목계지덕(木鷄之德)'

바람아님 2017. 5. 1. 07:51
[J플러스] 입력 2017.04.28 15:51

'목계지덕(木鷄之德)'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성급하게 동요하지 않으며, 언제나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띠고 있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절대 카리스마를 ‘목계지덕(木鷄之德)’이라 부릅니다.

닭 싸움를 좋아하던 왕이 용맹한 싸움닭을 구하여 기성자(紀渻子)라는 사람에게 맡겨 최강의 투계(鬪鷄)로 조련하도록 명하고, 열흘이 지나서 물었습니다. 

닭싸움


“닭이 이제 싸우기에 충분한가?”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오직 자신이 최고라는 오만이 심하여 그 교만과 아집을 떨쳐내야 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오만과 아집


열흘이 지난 다음 왕이 다시 묻자 조련사가 대답했습니다.
“이제 겨우 겸손은 익혔지만 상대의 소리와 움직임에 너무 쉽게 반응하는 조급함이 심하여 아직 부족합니다.” 

꿀 바른 바위로 만든 곰사냥 덫


또다시 열흘이 지나서 조련장을 찾은 왕이 물었습니다.
“이제 되었는가?”
“간신히 참을성을 갖췄지만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이니 아직 멀었습니다.” 

독시(毒視)


다시 열흘을 기다린 후 왕이 묻자, 조련사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충분합니다. 이제 겸양을 갖추었고, 어떤 돌발 상황, 어떤 상대에게도 가볍게 동요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며 상대의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나무로 깎은 목계(木鷄)와 같은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어떤 상대라도 이 닭과 마주 서면 고개를 숙이고 부리를 감출 것입니다.”
-장자(壯者) ‘달생(達生)’편-
 

평정심


인본주의 심리철학을 창시한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H. Maslow)는 아래와 같이 인간의 욕구가 5단계의 연쇄적 과정으로 전개된다는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


1단계, 생리(physiological)적 욕구 : 먹고 자고 배설하고 종족을 보존
2단계, 안전(safety)의 욕구 : 물질적 정신적 안전한 상태 추구
3단계, 사랑과 소속(love&belonging)의 욕구 : 어울리고 사랑하는 사회적 관계 추구
4단계, 존경(esteem)의 욕구 : 인정과 주목을 통한 명예 추구
5단계,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의 욕구 :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추구


삶의 필수 요소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삶을 지속하려는 안전(安全)의 욕구가 발현되고, 안전한 삶이 확보되어야 비로소 나와 다른 존재들을 사랑하며, 가족을 이뤄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려는 욕구가 발현됩니다.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 토대에서 사회의 구성원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는 명예를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네 단계의 욕구가 충족된 다음 수순으로 자기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찾는 자아실현 욕구가 발현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의 한국사회를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관점에서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안전의 욕구에 도달하지 못한 채 삶의 필수요소인 생리적 욕구 단계에서 버거움을 느끼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매슬로우가 정립한 욕구단계는 인간 욕구를 연쇄적으로 배열한 것일 뿐, 인간의 행복을 계층적 단계로 배열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모든 일은 그 체험 자체에 행복감이 내재된 큰 선물이며, 그 과정에서 선정하고 도달하는 수많은 목적지들은 사실은 삶을 체험하기 위한 중간 경유지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언제나 이미 지나온 과거나 다음 단계의 목적지로 선정했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마음을 보내버리고 우리 자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바로 이 곳, 이 순간에는 한 번도 온전하게 존재해 본 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와 지금과 미래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한 황제로 인간의 모든 욕구단계를 충족했을 것 같지만 훗날 ‘내 생애에서 행복한 날은 단 6일뿐이었다’고 회상했고, 보지도 듣지도 못하여 평생 생존의 필수 욕구조차 충족하기 어려웠던 헬렌 켈러는 훗날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깊은 평정심에 이르러 어떤 돌발상황이나 어떤 상대에 대해서도 과민한 동요 없이 감각적으로 그 실체를 인지할 수 있는 천하무적 투계(鬪鷄)나 모든 감각을 존재하는 지금에 집중했던 헬렌 켈러의 태도처럼 매 순간 삶에서 펼쳐지는 지금에 집중할 때 우리는 삶의 정수(精髓)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해피나우


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목계지덕(木鷄之德)’의 평정심(平靜心)을 상기하여 우리가 삶의 지금(至今)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든 체험의 정수를 알알이 맛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