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에세이] 부끄러운 기억 하나

바람아님 2017. 4. 27. 07:33
경향신문 2017.04.26. 20:51


문정희 시인

낯선 괴물들이 출몰하는 시대이다. 어떻게 이런 모습과 상황이 있을 수 있는가. 최근 처음 만나는 현상들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경악을 하고 분통을 터뜨리다가 불현듯 생각에 빠진다.

이 낯선 모습과 현상들은 누가 만든 것인가. 나라 밖의 일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나라 안의 일들은 바로 우리가 만든 것이다. 슬프고 씁쓸한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나간 연대의 수많은 정치적 폭압과 물량 가치 속에 질주했던 난폭한 속도들이 비수처럼 또다시 살을 찌른다.


가능하면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참 정치적인 시인이구나 하고 스스로 놀랄 때가 있다.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다. ‘작가들의 유엔’이라는 미국 아이오와대학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세계 30여개국에서 온 작가들과 함께 메이플라워라는 기숙사 8층에 머물렀다. 누구의 제안이었는지 하루는 복도 끝 엘리베이터 앞 게시판에 ‘창’이라는 단어가 크게 나붙었다. 이번 주에는 ‘창’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함께 아트홀에 모여 시낭송을 하고 와인을 마시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속으로 냉소했다. 백일장이라면 기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 모인 상대들은 세계 각국에서 뽑혀온 나름으로 자부심에 차 있는 기성 작가들이 아닌가.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영어로 써야 하는 것이다. 길게 생각할 필요 없이 나는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시제(詩題)도 진부하고 시시했다. 그렇게 몇 주가 가는 동안 게시판에는 거울, 소금, 책 등의 단어들이 차례로 바뀌어 걸리곤 했다. 작가들은 그 제목들에 대해 나처럼 진부의 혐의를 두지 않고 한편씩 써가지고 나가 가벼이 낭송하고 웃고 즐기었다. 기실 시시하다며 피하는 것은 어쩌면 나 혼자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게시판에 붙은 시제를 보자 나는 그만 가슴 속에서 뭉클한 것이 치솟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제목이 국경(國境), 경계를 뜻하는 ‘보더(border)’가 아닌가. 어쩌면 분단국 코리아에서 온 시인을 겨냥한 제목 같았다.


그러잖아도 기회만 있으면 나는 외교관처럼 행동했었다. 시낭송 시간에는 판소리 가사로 만든 나의 시극 ‘구운몽’ 비디오를 틀었고, 서점에서 벌인 사인회 때는 정경화의 연주를 틀어놓고 자랑했으며, 카페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 대해 역설했다. 비록 외국 작가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확실히 애국 과잉, 정치 과잉의 시인이었다. 분단국 코리아 시인이라는 콤플렉스 탓인가? 게다가 한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심란한 것투성이였기 때문인가.


아무튼 나는 ‘국경’이라는 제목으로 밤새워 시를 썼다. 한국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다는 문화인류학과의 미국인 친구로부터 영어 감수까지 받아 드디어 나는 토요일 시낭송 무대에 올랐다. 즉흥시처럼 냅킨에다 시를 써서 들고 나가 한껏 기분을 내어 멋지게(?) 낭송했다.

“처음 우리에게 경계선은 없었다네/ 그냥 토끼 모양의 하얀 지도가 우리의 조국이었지/ 누가 그었을까/ 남과 북의 허리에/ 저 슬픈 국경선 아닌 국경선을….”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이런 시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반쯤 읽다가 말고 나는 그만 뜻하지 않은 격정에 휘말려 끝까지 시를 읽어 내려 갈 수가 없었다. 한참을 무대에 그대로 서있었다. 장내는 조용해졌다. 나는 이런 내 모습이 한없이 싫고 혐오스러웠다. 제어가 안 되는 감정을 노출하며 민족과 분단을 외치는 것을 누구보다 피해온 나였다.

겨우 수습을 한 후 간신히 낭송을 마무리하고 무대를 내려오자 여러 시인들이 나를 껴안았다. “당신 참 아름다웠어!”라고 속삭이는 시인도 있었지만 결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가 격정에 휘말린 것은 기실 민족 분단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절한 외로움 때문이었다.


모두가 성한 다리로 바삐 걸어가는 길 한가운데 나 혼자 피 흐르는 불구의 다리를 꺼내 놓고 상처를 내보이며 동정을 구하고 관심을 구걸하는 것 같은 참담함 때문이었다. 코리아의 분단을 아무도 그렇게 슬프고 비극적인 현실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오직 그것은 나의 비극, 나의 슬픔, 나의 상처였다. 나는 속으로 이를 깨물었다. 나는 애국 과잉, 정치 과잉의 시인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이 광화문을 뒤덮은 날 밤, 나는 탈북 작가들의 모임에 가서 강연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산물인 노벨상도, 그 상을 수상한 가수 밥 딜런도 생소한 그분들은 나와 같은 모국어를 썼지만 어떤 의미에서 아이오와에서 만난 작가들보다 더 공유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적은 것 같았다. 분단 시대를 살아온 작가로서의 현실을 다시 실감하는 밤이었다. 강연을 마치고 거리를 한참 걸었다.

촛불도 태극기도 나라 사랑의 표현 방법이다. 하지만 저 손에 깊고 재미있는 책 한권이 편하게 들리는 날은 언제일까.

나 역시 현실 정치의 부조리와 분노보다 인간의 본질을 깊이 투시하고, 나를 투시하고, 그것을 풍부한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누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그는 결코 메시아는 아닐 것이다. 결국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바로 우리여야 할 것이다.

텔레비전을 틀면 정제되지 않은 언어의 흙탕물과 수다와 벌건 음식물이 쏟아져 나오는 사회는 결코 일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 부정과 편법과 야합들 속에 기회주의자들이 힘을 갖는 사회는 오염된 바다에서 발견되는 기형의 물고기를 또 낳을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신종 괴물들의 출현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야수의 목소리를 줄이고 숨을 크게 내쉬고 한 계단만 더 높이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동안 고비를 넘고 넘어 여기까지 왔지 않는가. 깊은 지성이, 세련된 인문학이 변혁의 중심에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시대의 혁명은 정치로서가 아니라 문자로 된 문학으로서의 혁명이어야 한다.


<문정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