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가에서 흔히 회자되는 영어 표현 중 하나가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이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희망 사항’ 정도의 의미인데, ‘희망적 관측’이나 ‘부질없는 기대’와 같이 부정적 의미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위시풀 싱킹’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본인의 생각에 맞춰 사물을 바라보고 상황을 해석하다 보니 진짜 그대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데 있다. 잘못된 현실 분석에 기초한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외교가에서 ‘위시풀 싱킹’을 경계하는 이유다.
5일로 출범 27일째를 맞는 문재인 정부가 벌써 이 함정에 빠진 듯하다. 먼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인사들은 북핵 문제부터 개성공단·금강산관광,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한·일 위안부 합의까지 핵심 현안에서 희망 사항만 늘어놓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지난달 “5·24 대북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북한의 후견국이라는 비판을 받는 중국마저도 지난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제재 결의 채택에 동의할 정도로 국제사회의 단합된 압박 기조와는 상반되는 상황 인식이다.
사드 문제에서는 ‘아전인수’격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딕 더빈(민주·일리노이) 미국 상원의원이 “문 대통령에게 ‘한국이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드 예산을 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는데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더빈 의원이 ‘한국이 국회를 통해 결정한다면 이를 존중하겠다’고 했다”고만 전하는 식이다. 이는 홍석현 대미 특사가 지난 5월 중순 면담한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 입장과 상황을 존중한다”고 말했다고 전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영어의 ‘존중한다(respect)’가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데도, 한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동의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표현들만 강조한 셈이다.
대외관계에서 ‘위시풀 싱킹’은 단순한 상황 판단 오류를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5월에만 일주일 간격으로 3차례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한 북한에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오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위험한 ‘위시풀 싱킹’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드 철수를 기대하는 눈치가 상당하다. 정부의 잘못된 상황 인식에 따른 어설픈 사드 정책이 이미 중국에 또 다른 ‘위시풀 싱킹’을 심어준 셈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어떤 외교·안보정책을 취할지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폭풍 전야 분위기다. 한·미 간에는 늘 각종 현안에서 시차·온도 차가 존재했지만, 지난 1월 트럼프 행정부와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워싱턴 조야에서는 온도 차를 넘어 긴장감이 감지될 정도다. 한반도 안보의 근간인 한·미 동맹을 재확인하는 차원에서라도 6월 말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꼭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려면 당장 문재인 정부의 고위 외교·안보라인 인사들은 ‘위시풀 싱킹’을 버려야 한다. 외교적 성공은 냉철한 상황 인식과 현실적 정책 입안이 맞아떨어져야만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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