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헌법학
내가 사는 동네에 ‘존재의 이유’라는 상호를 가진 음식점이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강경화 외교장관 후보에 대한 위장전입 의혹과 자질 논란 등을 근거로 한 야 3당의 임명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장관에 임명했다. 시중 음식점도 그 존재 이유를 거론하는데 하물며 국회 인사청문회의 존재 이유가 여당 우원식 원내대표의 주장대로 겨우 ‘참고용’에 지나지 않는가? “강 장관에 대한 임명 찬성 여론이 더 높다”는 청와대의 정당성 주장은 ‘인민재판’식 민주주의와 어떻게 다른가? 자유민주주의는 내용(for the people, of the people)에 의해서가 아니고 절차·제도(by the people)에 의해서 그 내용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문 대통령의 5대 인사 원칙은 여론의 환영을 받았다. 이 비리 관련 도덕적 자질과 전문성 등 업무 능력을 국민을 대표해서 검증하라는 것이 국회 인사청문회의 존재 이유다. 사드 배치의 사실상 연기 조치의 근거로 ‘절차적 정당성’을 청와대 측은 주장한다. 그러면 강 장관 임명의 절차적 정당성은 어디서 어떻게 찾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가 강 장관 임명과 관련해 이달 말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거론한 것은 ‘참고용’ 논거보다 차라리 낫다. 그러면 우리를 둘러싼 4대 강국의 무력시위와 새 정부 이후에도 계속 쏘아대는 핵 위협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무인기의 사드·군 시설 촬영 등의 도발이 보여주는 외교·안보상 긴급한 필요성은 사드 배치 연기의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강 장관 임명을 놓고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폭거”라며 반발하고 있는 3당에 대해 “선전포고라든지, 강행이라든지, 협치(協治)는 없다든지, 마치 대통령과 야당 간에 승부를,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하는 것은 참으로 온당치 못하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역으로 야당의 시각에서도 옳은 발언이다. 야당의 시각에서는 대통령의 임명 강행이야말로 야당에 대해 ‘협치는 없으며, 승부를, 전쟁을 벌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협치라 부르든 소통이라 부르든 그것은 쌍방향 행동양식임을 주목해야 한다. 대통령과 국회는 상호 명령·복종의 관계에 있지 않다.
대통령(행정부)과 국회의 협치는 헌법(憲法)이 명령하는 국가 운영 방식이다. 다만, 행정부는 대통령이 대표하며 국회는 여당과 야당으로 구성돼 있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회동하고 설득과 양보와 타협을 위해 대화를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어느 의미에서는 필요성이 낳은, 협치의 방식이다. 대통령은 저쯤 있고 대통령의 발언과 의중을 일사불란하게 받드는 청와대 참모·여당 측과 야당 사이에는 협치와 대화가 아니라,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 및 그 뜻을 받드는 일방통행식 여당과, 발목이라도 잡고 싶은 소외된 야당이 있을 뿐이다.
국가권력 행사는 행정이든 입법이든 절차적 정당성과 실체적 정당성 모두를 요구한다. 사드 배치 연기는 환경영향평가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위한 것이라지만 실체적 정당성(외교안보상 합리성)을 결(缺)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강 장관 임명은 실체적 정당성(외교상 긴급한 필요성)은 갖췄다고 할 수 있겠으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 문제다. 헌법이 요구하는 협치를 위해 무슨 절차적 노력을 경주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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