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가뭄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지자체마다 양수기, 급수차 등을 동원해 물을 대고 있지만 내부까지 말라버린 메마른 땅을 적시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여름 강수량이 연 강수량의 50~60%를 차지했다. 따라서 물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해 농사의 풍흉이 결정됐다. 양수기도 급수차도 없었던 과거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물을 관리하고, 가뭄을 극복했을까.
경남 고성군 마암면 삼락리에 있는 한 둠벙의 모습. 고성군 제공 |
둠벙은 임시로 용수를 가두어 두는 물 저장고를 뜻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둠벙은 웅덩이의 충청도 방언이다. 경북 지역에서는 덤벙, 전남 지역에서는 둠뱅으로 불렸다.
다양한 형태의 둠벙 모습. 농촌진흥청 제공 |
특히 평지보다 수리시설이 크게 부족한 산간지역에서는 둠벙의 역할이 컸다. 산지에서 계곡물과 같이 차가운 물을 논에 댈 경우 벼 냉해가 발생하기 쉬웠다. 이에 선조들은 둠벙과 연계한 우회 수로, 온수지 등의 수리시설을 설치한 뒤 물을 햇볕에 장시간 노출시켜 수온을 높인 뒤 논에 물을 대는 지혜를 발휘했다. 둠벙은 1970년대 이후 활발히 진행된 저수지와 댐 조성, 관개수로의 전국적 보급, 정부의 농촌근대화촉진법에 의한 경지정리사업과 함께 점차 사라져갔다.
경남 고성군 둠벙의 항공사진. 농촌진흥청 제공 |
둠벙은 항상 물이 고여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서 비상용수 저장고의 기능 뿐 아니라 어류, 수서무척추동물들의 피난처와 서식처로도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올해 여러 지자체에서 가뭄 대비를 위한 둠벙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 수백년 전 농경사회에서 안정적인 농사와 수확량 증대를 위한 선조들의 지혜인 둠벙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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