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8.14 이지훈 세종대 교수(혼창통아카데미 주임교수)
['센스메이킹']
신발회사 CEO가 신발을 안산다면?
'현장정신' 잊지마라
몇 년 전 포드는 쇠락하는 고급차 브랜드 '링컨'을 되살리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과거와 달랐던 점은 '기술'이 아니라 '경험'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포드는 대도시 거주자 60명을 반년에 걸쳐 관찰했다.
집과 직장을 쫓아다니고, 같이 점심도 먹고, 직장 동료를 인터뷰하는 식이다.
그 결과는 '운전 자체는 고객의 자동차 경험에서 아주 작은 요소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고객의 자동차는 95%의 시간 동안 어딘가에 주차된다.
운행되는 5%의 시간도 지루한 정체 속에서 보낸다. 운전자는 기본적으로 늘 멈춰 있는 상태에 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포드가 운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소비자 불만을 샀다.
운전이 아니라면 무엇이 자동차를 소유하게 만들까? 그것은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누구는 혼자 편하게 차를 몰고 다니는 데서 자유를 느끼고,
누구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차에서 보내는 시간을 대단히 좋아했다.
이 발견 이후로 포드의 직원들은 더는 "기술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기술을 통해 사람의 경험을 뒷받침하는 방법"에 집중했다.
이 책은 포드를 도운 컨설팅업체 레드어소시에이츠 창업자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사진〉가 썼다.
이 업체의 모토는 "사자를 알고 싶다면 동물원이 아니라 초원으로 가라"이다.
이 회사의 철학적 기반은 하이데거이다.
"사람들을 이해하길 바란다면, 그 사람들의 눈이 돼서 그들이 사는 세계를 경험하며 그들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그래야만 피상적 데이터(thin data)가 아닌 심층적 데이터(thick data)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방법론을 이 회사는 센스메이킹이라고 부른다.
센스메이킹(이것은 빅데이터가 알려주지 않는 전략이다)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 김태훈/ 위즈덤하우스/ 2017.07.25/ 308 p
책의 묘미는 기업 사례에 있다.
코카콜라는 중국 차 시장에 처음 진입했을 때 실패를 맛보았다.
미국에서 차 문화는 늦은 오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달고 기운 나는 것,
즉 설탕과 카페인을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차 문화는 전혀 다르다.
중국에서 차의 핵심은 '덜어내는' 것이다. 차는 명상처럼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는 도구였다.
이 점을 반영했을 때 코카콜라는 비로소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빅데이터를 맹비판한다. 결코 수치가 저절로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
데이터 더미에서 맥락을 도출하려면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적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고, 차선책은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다.
"인문학은 호사가 아니라 경쟁력"이다.
백 번 수긍이 가지만,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과 데이터의 세계를 탈인간적이라고 매도하는 대목엔 다소 일방적인 측면도 보인다.
경험 많은 빅데이터 전문가들은 데이터에서 맥락을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인문학의 중요성도 알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알파고는 기계학습만으로 이 책에서 예찬하는 하이데거적 숙달의 고차원의 단계, 즉 우주적인 수를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 경영자들이 정작 받아들여야 할 점은 '현장 정신'일 것이다.
신발회사 경영자는 신발 매장에 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동차 회사 경영자들은 직접 차를 산 적이 없다.
저자는 반문한다. "그들이 고객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일까?"
경험의 질감이 없다면, 그들에게 제공된 데이터는 모든 진실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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