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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꺼냈다 묻은' 황복사터 십이지신상 90년 만에 햇빛

바람아님 2017. 9. 5. 09:21
한겨레 2017.09.04. 19:46

1928년 일본 학자 노세 우시조 첫 발굴
신상 4개 당시 모습 그대로 나와
미궁에 싸인 황복사 실체 파악할 주요단서


지난봄 경주 황복사 석탑 앞에서 90년 만에 다시 발굴된 신라 십이지신상. 4구가 나왔는데, 조형성이나 기법 등에서 신라 십이지신상 가운데 최고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사진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에서 전시되고 있다.

통일신라 조각의 최고 명품 가운데 하나인 1300년 전 십이지신상은 90년 전 묻힐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사람처럼 두루마기 모양의 평복을 입은 양과 말, 뱀, 토끼의 정교한 부조상. 네 신상은 칼 등의 지물을 들고서 늠름한 자태로 고찰터 땅속을 지키고 있었다.


1928년 일본 학자 노세 우시조(1889~1954)가 발굴해 주목받았던 경주 낭산 황복사터의 십이지신상이 묻힌 지 9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 황복사터 부근을 지난해부터 조사해온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지난 5월 황복사 석탑 앞의 건물 추정 터를 시굴하면서 십이지신상 4구가 20년대 발굴 모습 그대로 묻힌 것을 확인하고 전모를 노출시킨 상태라고 4일 밝혔다.


십이지신상은 땅을 지키는 신령스러운 열두 동물의 신장상이다. 은나라, 한나라 등의 고대 중국에서 불교, 도교 신앙의 영향 아래 유래한 것으로, 신라에서 갑옷 또는 평복 차림의 더욱 발전된 도상으로 나타난다. 괘릉과 성덕왕릉, 전 김유신 장군의 묘 호석 등에서 부조, 환조 형식으로 나타나는 신상들은 신라인의 독특한 방위신앙 관념을 드러내는 특유의 미술사 유물로 이름 높다.

다시 빛을 본 십이지신상들은 1928년 노세의 첫 발굴 당시 현장 사진, 조사 경위와 조형적 특징 등이 일본 학계에 보고됐으며, 해방 뒤인 68년에도 문화재관리국이 약식조사를 한 바 있다. 경력이 일천한 젊은 학자 노세의 조사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조선총독부는 출토유물의 노출공개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부조상들은 발굴 이후 다시 묻혔지만, 신라 십이지신상 중에서도 조형미, 만듦새 등이 가장 빼어난 수작으로 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국내 학계에서는 그동안 노세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 십이지진상이 황복사 건물의 기단터를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해왔다. 특히 지난 2월 성림문화재연구원이 절터 앞 들판에 방치됐던 옛 석물들을 조사한 결과 신라 미완성 왕릉(가릉: 효성왕릉으로 추정)의 석물들임을 밝혀내면서 절터 앞에 묻혔던 십이지신상도 이 미완성 왕릉의 석물들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을 재활용했을 것이란 견해가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재발굴한 십이지신상 면석의 크기를 실측한 결과 상들은 절터 앞 왕릉 석물들보다 크기가 훨씬 작고 뒷부분 탱석 얼개도 달랐다. 미지의 다른 왕릉 석물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을 재활용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박광열 원장은 “지난달부터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간 절터 추가 조사가 올 하반기 진행되면 십이지신상 조성 경위에 대한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노세 우시조는 일본 교토제국대학 건축학교실 조수로 일하면서 한반도 십이지신상 연구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1926년 구스타프 스웨덴 황태자가 경주 서봉총 발굴을 참관할 당시 안내를 위해 경주에 동행했다가 현지 왕릉과 황복사터 등에 드러난 십이지신상을 보고 매료돼 그 뒤 10여차례 조선을 찾았다. 신라 황복사터와 원원사터 석탑, 고려왕릉의 십이지신상을 집중 조사하며 이 분야 연구의 선구자가 됐다. 신라의 주요 석탑 유산인 경주 교외의 원원사터 석탑을 1931년 자비로 복원하는 등 신라 고대 문화 복원을 위해 헌신한 양심적 학자라는 게 국내 학계의 평가다.

1928년 일본 학자 노세 우시조가 황복사터에서 십이지신상을 발굴할 당시 드러난 상 위에 걸터앉아 실측봉을 들고 찍은 사진. 최근 비슷한 구도로 찍은 재발굴 사진과 함께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에서 전시되고 있다.

1928년 노세가 황룡사터 십이지신상을 발굴할 당시의 사진과 최근 오세윤 사진가가 거의 같은 구도에서 찍은 재발굴 현장 사진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10월31일까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90년 전 흑백사진에 담긴 우리 문화재’전에 두 사진이 나란히 내걸렸다. 이 전시는 노세가 20~30년대 경주 등 한반도를 돌며 찍은 근대 문화유산들의 유리건판 사진 디지털 재생본 80여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출품된 유리건판 사진들은 일본의 문화재 전문 사진 회사인 아스카엔이 입수해 보관해온 것들로, 대부분 처음 내보이는 희귀본들이라고 한다. 


경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