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발길을 멈추고 코스모스를 보고 있자니 옛 생각이 났다. 운문사에서 공부할 때다. 해마다 이맘때면 큰 법당 뒤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다. 하루는 오전 강의가 끝나자 호미 챙겨서 법당 뒤쪽에 모이라는 공지가 있었다. ‘코스모스가 피었으니 꽃길이라도 걸으려나? 그런데 호미는 왜 가져 오라고 하지?’ 한껏 기대와 의문을 품고 법당 뒤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이미 어른 스님께서 나와 있었다. 쭈뼛쭈뼛 가까이 가니, 코스모스를 줄 맞추어 다시 심으라신다. “뭐라고요? 코스모스 줄을 맞추라고요? 왜요? 이대로 예쁜데요.” 다들 의아해하며 작은 소리로 나무라듯 소곤댔다. 말하자면 들쭉날쭉 제멋대로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한 줄로 맞추어서 다시 심으라는 얘긴데, 도무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몰랐다.
그날 우리는 점심공양 전까지 코스모스를 옮겨 심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다 옮기고 보니 역시 인위적인 아름다움만 남은 듯했다. 며칠 후, 한 방문객과 그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정갈하고 예쁘다며 너무나 좋아하는 게 아닌가. 어쩜 이렇게 가지런히 심었느냐며 비구니스님들의 단아함이 그대로 느껴진다나. ‘아, 그런가’ 싶었다.
코스모스 줄 맞추어 심던 시절 나는 많은 줄을 세웠다. 우선 빡빡 닦은 하얀 고무신 줄이다. 백 켤레가 넘는 고무신이 각자 예쁜 표시를 하고서 ‘청풍료(淸風寮)’ 댓돌 위에 일렬로 놓였다. 다음은 의식할 때 입는 옷, 가사장삼을 옷걸이에 줄 맞추어 걸었다. 발우도 이불도 책상도 순서대로 놓고, 예불 독경 좌선 공양 등 모든 것에 각이 잡혔다. 흐트러지면 경책(警策)을 받았다. 이백 명이 넘는 스님들이 한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마땅히 질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때는 줄도 세우고 일률적으로 살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도 많이 무던해졌다. 옛 어른들이 전해 주려던 단정한 줄 세우기는 더 이상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 엄격한 질서가 굴레가 되는 것이 싫어서다. 타고난 자질대로 살며, 출가자의 멋을 한껏 느끼고 싶었다. 더구나 이젠 세상도 많이 변했으니까.
이 세상은 모두가 존중받는 곳이다. 그만큼 다양성이 존중된다.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자유로움이 우리의 개성을 돋보이게 해주기에, 획일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도 안 되고, 특정한 관점과 이념으로 모든 것을 구분하는 사회풍토도 지양해야겠다.
만발한 코스모스를 보니, 이제 곧 우리 강산에도 다양한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풍성한 가을을 선사할 것 같다. 저마다의 빛깔을 한껏 뽐내면서. 그나저나 운문사에서는 아직도 코스모스를 줄 맞추어 심으려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