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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38] 박쥐를 기다리며

바람아님 2017. 9. 27. 08:43
조선일보 2017.09.26.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동남아시아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나는 꼭 저녁 산책을 나간다. 때맞춰 저녁 사냥을 나올 박쥐들을 만날 설렘을 안고. 몇 년 전에는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함께 찾은 홍콩의 어느 레스토랑 안으로 박쥐가 날아들어 은근히 반가웠다. 사실 동남아시아까지 갈 것도 없다. 이웃 나라 일본의 웬만한 중소 도시에서도 저녁때 강가를 거닐다 보면 강물 위를 나지막이 휘젓는 박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에서는 더 이상 박쥐를 볼 수 없다. 도심의 생태성이 전반적으로 저하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건물의 구조도 한몫한다. 깎아지른 직육면체 형태의 건물 어디에도 옛날 집 처마처럼 박쥐가 매달릴 공간이 없다. 최근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진은 유리창의 매끈한 표면이 박쥐의 초음파 수신을 어렵게 한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박쥐는 초음파를 내보내고 그것이 물체에 반사돼 돌아오는 것을 감지해 먹이도 잡아먹고 장애물도 피해 다닌다. 입체나 굴곡진 표면에서 반사되는 파장의 차별적 양상으로 물체의 존재를 파악하는데 완벽한 평면은 차라리 허공처럼 인식되어 종종 부딪히는 것이다.


약 925종이 알려진 박쥐는 세계 포유동물 다양성의 20%를 차지한다. 몇몇 열대 지방에서는 박쥐의 종 다양성이 포유동물 전체의 절반을 웃돈다. 우리나라에도 21종의 박쥐가 살고 있다. 모기 때문에 밤잠을 설치나요? 가습기 살균제에 놀란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모기향을 피운 채 주무시느라 찜찜한가요? 박쥐 한 마리가 한 시간에 잡아먹는 모기의 수가 무려 1000마리에 달한다. 게다가 박쥐는 같은 체중의 다른 포유동물보다 훨씬 오래 산다. 평균 수명이 거의 40년에 이른다. 잘 키운 박쥐 한 마리가 열 모기향 안 부럽다.


도심에 다시 박쥐를 불러들이자. 건물마다 박쥐가 머물 수 있는 '처마' 공간을 마련하고 유리 충돌을 막는 방안을 찾아보자. 박쥐가 징그럽다고 생각하는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박쥐도 그렇다.

2015년 5월26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금암리 폐금광에서 천연기념물 452호인 '붉은박쥐' 16마리가 서식하는 것을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한상훈 박사 등 현장조사팀이 확인했다. 붉은박쥐 한 마리가 동굴 천장에 매달려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