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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의 연휴, 10권의 책] 18세기 日記에서 스릴러까지… 10인의 렌즈로 '우주'를 읽다

바람아님 2017. 9. 29. 07:42
(조선일보 2017.09.29)

[10일의 연휴, 10권의 책]

18세기 日記에서 스릴러까지… 10인의 렌즈로 '우주'를 읽다 


10일의 연휴, 10권의 책

이철원 기자



[日記 ] 50세까지 쌀 2000섬을 먹었다… 나는 쌀벌레인가


일기를 쓰다:흠영 선집 | 유만주 지음 | 김하라 편역 | 전 2권|돌베개 | 각 권 1만1000원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지금 50세인 사람은 이미 쌀 2000여섬을 먹었고, 100년이면 그 갑절을 웃도는 양을 먹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게 바로 쌀벌레겠지." 18세기 유만주(兪晩柱, 1755-1788)가 자신의 일기 

'흠영(欽英)'에 쓴 한 대목이다. 밥만 축내는 밥벌레의 삶을 자조했다. 스무 살에 시작해 서른네 

살에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쓴 일기는 끝내 과거에도 급제 못한 그의 우울한 몽상과 벌레 같은 

인생에 대한 자조로 가득하다.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괜찮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만 모아 

책으로 묶으려는 다짐도 보이고, 모멸 퇴치법에 대한 궁리도 나온다. 이런 말도 보인다.


"어째서 사람들은 무엇도 기억하려 하지 않으면서 기억에 남는 이가 되려고만 하는 걸까?"


"밤에 사관(史官)이 되는 꿈을 꾸었다"는 말은 슬프다. "어찌 그저 남들만 무섭다 하겠는가? 나도 내가 무섭다"고도 썼다. 

인생이 뜻 같지 않고 삶이 왠지 비루하게 여겨질 때 그의 일기를 읽으면 위로가 된다. 

편자의 정리가 요령을 얻어 단숨에 술술 읽힌다. / 정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여행 산문] 정유정의 히말라야 등정기, 눈물나게 웃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303쪽|1만4000원 


최인아·최인아책방 대표최인아·최인아책방 대표


3년 전 여름에 나는 '자유인'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스스로 선택한 퇴직이고 은퇴였으나 퇴직자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고 

'자유'는 쉽게 누려지지 않았다. 짧은 여행길에 올랐다. 괴산 숲으로 향했다. 

한참 동안 숲속을 걸은 후 방으로 올라가 책을 폈다. 나의 우울 모드는 거기까지. 

이 책을 펴자 기분은 급반전, 언제 우울했나 싶을 만큼 읽는 내내 낄낄거렸다.


작가는 '7년의 밤'과 '28일'을 쓴 후 아마도 번아웃(burnout)에 빠졌던 것 같다. 왜 안 그렇겠나. 

읽는 사람이 힘들 만큼 흡인력이 대단한 소설을 연거푸 써댔으니. 그녀는 살고자, 살아서 다시 쓰고자 히말라야로 갔다. 

그 이야기를 쓴 게 바로 이 책이다. 제목만 보면 마치 히말라야에서 구도라도 한 것 같은데 책은 기대를 완벽하게 배반한다. 

히말라야에서 변비로 끙끙댄 이야기라니… 대단한 이야기꾼이 배꼽 빠지게 버무린 솜씨 덕에 연신 웃다 보면 

하룻밤 만에 원기 재충전이다.


사는 게 우울한 분들이라면 이번 연휴에 이 책을 펴 보시라. 눈물 나게 웃다 보면 에너지가 다시 돌아온다. 

게다가 단숨에 읽힌다. / 최인아·최인아책방 대표



[미술 산문] 꽃이 지지 않는 모네의 정원을 찾아


모네가 사랑한 정원 | 데브라 맨코프 | 김잔디 옮김 | 중앙북스| 242쪽|1만8000원


정여울·작가정여울·작가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꾸는 삶의 터전을 방문해야 한다. 

특히 평범한 일상의 장소를 위대한 창조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삶을 어떻게 가꿀까'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힌트를 준다. 

이 책은 모네가 지베르니에 정착해 황폐한 땅에 꽃과 나무를 심어 활기를 불어넣고, 마침내 굳이 

스케치 여행을 떠날 필요없이 정원 안에서 온 세상의 천변만화한 색채를 낱낱이 표현해낼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냈다. 

이제 모네의 정원은 한 예술가의 사유지를 넘어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모네는 세상의 모든 빛을 자신의 정원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지베르니의 정원은 꽃이 지지 않는 정원이 되었다. 

한창 철에만 불꽃놀이처럼 반짝 꽃을 피워내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모네의 정원은 겨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어떤 

꽃이든 반드시 피어 있을 수 있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었다. 

모네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이 정원을 거닐고, 꽃향기를 맡고, 나무들 사이에서 한껏 늘어져 쉬어야 하지 않을까. 

쇠락한 시골 마을 지베르니는 이제 전 세계 관광객이 모여드는 살아 있는 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모네의 정원은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만남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장소, 

세상의 모든 빛을 모아놓은 위대한 자연의 팔레트다. / 정여울·작가



[투병 산문] 한 번이라도 몸이 아파본 당신에게


아픈 몸을 살다 | 아서 프랭크 지음 |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56쪽|1만3000원


임경선·작가임경선·작가


열흘간의 추석 연휴라면 최소 하루 이틀은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이 허락될 것이다. 

그 차분한 가을날, 이 책을 읽으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면 좋겠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9세에 심장마비가 찾아왔다. 고환암까지 겪었다. 

보통의 투병기들이 눈물겹거나 비장하다면, 이 책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3자의 시각으로 

차갑게 바라보며 질병이 한 사람의 인생에 끼친 구체적인 변화(나쁜 것과 좋은 것 모두)를 세밀하게 

설명할 뿐이다. 감정의 과장도, 상황의 미화도, 감동의 강요도 없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날것 그대로의 현실이야말로 의미 있는 진실이기에, 한 번이라도 몸이 많이 아팠던 독자라면 

자신이 깊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 책은 고통에 관한 지적인 성찰이기도 하다. 

실제로 죽음을 의식하는 삶을 살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통째로 달라진다.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아픈 몸을 산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고통을 통해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가는 일이다. / 임경선·작가




[만화] 유대인 학살에 대한 우아하고 섬세한 해석


쥐 | 아트 슈피겔만 글·그림 | 권희섭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315쪽|1만8000원


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만화는 어린이들이나 보는 가벼운 매체이고, 시간 죽이기에 딱 좋은 허황된 내용 위주이며, 

예술성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저급한 장르라고 생각한다면 이 만화책을 보고 생각이 바뀔 것이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이 작품은 대단히 섬세한 해석과 우아한 필치로 

최고 수준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낸 수작이다. 감동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14년에 걸친 방대한 작업 끝에 1991년에 두 권으로 완간되자마자 곧 세계 문화계에 충격을 

안겨주었고, 1992년에는 만화책으로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받았다. 물론 만화의 속성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겠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인류가 겪은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인 유대인 학살은 지나가버린 옛일이 아니라 현재 세대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메시지가 절대 가볍지 않다. 우리 사회에 전쟁의 위험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때,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보되 

예기치 않은 장르를 통해 역사를 읽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 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소설(스릴러)] 준비기간 6년·참고서적 수십 권,  블록버스터급 스릴러를 읽다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688쪽|1만5000원


도진기·추리소설 쓰는 변호사도진기·추리소설 쓰는 변호사


1만원의 영화비가 있다고 치자. 단순 확률로, 제작비 500만불을 들인 아이디어형 영화와 5000만불을 

들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있다면 후자를 택하는 쪽이 안전하다.


소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책을 한 권 산다면, 신내림을 받듯 일필휘지로 쓴 소설도 좋겠지만, 

공을 들인 쪽이 만족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는 전적으로 후자다. 

6년의 준비 기간에, 참고 서적만 수십 권이고, 잔글씨로 700페이지에 육박한다. 그런데, 발상마저 참신하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13계단', '그레이브 디거'로 깊은 인상을 남기긴 했다. 

오랜만의 신작 '제노사이드'를 읽다가 이 사람 미쳤나, 싶었다. 한 작가가 이렇게나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작품의 내용이나 소재를 언급할까 고민했다. 그걸 이야기하면 추천 글을 쓰기는 훨씬 쉽겠지만, 안 하기로 했다.


대개의 미스터리물이 그렇듯이, 괜찮은 작품일수록 아무것도 모르고 읽어 내려갔을 때 즐거움이 더 크다. 

이 작품도 분명 그쪽에 속한다. / 도진기·추리소설 쓰는 변호사



[소설(로맨스)] 독백을 대화로 바꾸는 사랑의 마법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382쪽|1만1000원


백영옥·소설가백영옥·소설가


4인용 식탁을 가진 주부 에미는 잘못 보낸 잡지 정기구독 해지 이메일 때문에 심리학자 레오와 

연결된다. "제가 대신 구독을 끊어 드릴까요?"


이들의 이메일 소통은 이렇게 시작한다. 독백을 대화로 바꾸는 마법은 사랑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일'이다. 결별 일주일 만에 다른 여자에게 홀딱 반하는 일이나, 남편을 좋아하는데도 

다른 남자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 역시 그렇다.


사랑할 자격이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동어반복 같지만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사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10가지' 같은 주제들이다. 

톱 3 안에는 꼭 이런 후회가 있다. '그때, 그녀(그)에게 고백했어야 했다.'


"레오, 당신의 그런 점이 감탄스러워요. 당신은 제가 가슴이 큰지 어떤지 알고 싶어하지 않아요. 

외려 큰 가슴 콤플렉스가 있는지 알고 싶어하죠. 일반적인 남자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에미의 말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남자 주인공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스릴러물이 아닌데도 주인공들이 만날지 말지가 궁금해 정신없이 페이지가 넘어간다는 점에서는 더 그렇다. 

/ 백영옥·소설가



[시집] 외로움에 졌습니다, 바다에 갔습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44쪽|8000원


유희경·시인·시집서점 주인유희경·시인·시집서점 주인


사람은 누구나 혼자다. 외로움은, 그래서 태생적 감정이다. 

참으로 아프고 허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잊기 위해 노력한다. 관계를 맺고 쌓아가며 그 안에서 

어울리며 살아간다. 그렇다 하여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다가,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가, 

밤거리를 걷다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다가 문득 쓸쓸해지고 마는 것이다. 

애초 삶이라는 게 그런 것이라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면 굳이 잊으려 노력해야 하는가. 

들여다보고 의미를 발견해보려는 노력을 해보는 것은 어떤가. 

이병률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는 툭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을 아릿하게 노래한 

외로움의 시집이다. 이 시집은 "자리에 누워 나는 모르겠다" 싶다가 사실 "조금은 알 것도" 같다고 중얼거려도 보는 

깊은 밤을 닮아 있다. 

동시에 "가끔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게 인간이라고, 그러니 지금 나의 삶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토닥여준다. 

어쩌랴. 어차피 혼자인 것을. 그러니 괜찮다. 충분하다. 

긴 연휴, 자의 반 타의 반 사회의 관계들과 잠시 떨어져 지내는 시기. 하루 짬 내어서 혼자로 가득한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떨까. '혼자만이 혼자만큼을' 알 수 있는 것이니까. 

/ 유희경·시인·시집서점 주인


박상훈 기자


[자서전] 츠바이크의 시선으로 본 20세기 유럽


어제의 세계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570쪽|1만8000원


김정운·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김정운·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팩트체크'라는 희한한 단어가 어느 순간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처럼 폭력적인 경우는 없다. 

수많은 사건 가운데 유독 그 사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는 행위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자주 왜곡되고, 불분명하지만 그래도 인간의 기억이 훨씬 설득력 있다. 

상호 주관성을 전제로 한 의미 구성의 과정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자서전 '어제의 세계'는 오로지 그의 기억에 의존해 

써졌다. 알려진 장서가였던 츠바이크는 히틀러의 나치를 피해 자신의 모든 책과 자료를 고향에 두고 런던으로 탈출했기 

때문이다. 망명지인 런던에서도 '독일어권 작가'라는 이유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브라질로 옮겨간다. 

그러나 태평양에서도 전쟁이 시작되자 절망한 나머지 그는 아내와 함께 자살한다. 

참으로 선한 평화주의자였던 그는 유서 마지막에 '너무나 인내심 없는 저는 먼저 갑니다!'라고 썼다.


저자 스스로 자신의 책이 생전에 성공했던 이유로 '인내심 없는 글쓰기'를 들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장황한 것, 질질 끄는 것, 혹은 필요 없이 심각한 글쓰기를 거의 혐오 수준으로 싫어했다. 

고전이라 알려진 책들에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폼 잡는' 문장들을 전부 빼버린 재창작을 계획했을 정도다. 

(첫 문장을 쓰느라 수십 장의 원고지를 찢었다는 식의 '구라'는 나도 질색이다. 

그런 작가들은 글쓰기란 '천형(天刑)'과 같은 괴로움이라는 엄살도 꼭 덧붙인다. 제발 그러지 말자!)


20세기 초 유럽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의 깊숙한 내부를 들여다보는 재미에 500쪽 넘는 책이 얇게 느껴진다. 

그 아름답고 낙관적 세계가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무너져 내렸는가를 단숨에 읽고 나면 아주 오랫동안 멍해진다. 

전쟁의 위협이 난무하는 추석의 고요함 가운데 읽는다면 더 그럴 것 같다. 

/ 김정운·문화심리학자(나름 화가)




[만화] 혼자여도 즐거운 한가위를 위하여


혼자를 기르는 법 | 김정연 글·그림 | 창비|508쪽 | 1만6000원


조남주·소설가조남주·소설가


3년 정도 혼자 살았다. 

독립이었다고 우기고 싶지만, 굳이 따진다면 가출과 독립의 비중이 8:2쯤 됐다. 

여러 집안 사정까지 겹치면서 한동안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고 당연히 명절에도 혼자였다. 

별로 외롭지는 않았다. 출근하는 날이 많았고 일이 끝나면 영화 보고 술 마시고 잘 놀았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며 올려다보면 원룸 건물의 창들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었다.

복도를 걷는 내 발소리가 울리고 세면대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그때는 조금 무섭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던 것 같다.


결혼 이후의 명절은 정신없었던 기억뿐이다. 양가 모두 큰집이 아닌데도 늘 북적였다. 

끝도 없이 전을 부치며, 송편을 빚으며, 밥상을 차리며, 그릇들을 씻으며, 커피를 타며, 과일을 깎으며,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 둘째는 언제 낳을 거니, 아들은 왜 없니, 애가 왜 기침을 하니, 왜 그렇게 춥게 입었니, 

덥게 입었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 들으며 내내 혼자 있고 싶었다. 

제발, 아, 아, 제발 혼자 있고 싶었다.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은 고향인 경북 안동을 떠나 서울에 혼자 살며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는 사회 초년생, 

'이시다'의 이야기다. 그녀는 학교나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혼자의 삶을 선택했고 반대하는 가족과의 갈등을 감수하며 서울에 올라와 자리 잡았다. 

오늘도 서울 한구석에서 중장비보다 오래 일하고 집에 홀로 돌아와 자신을 돌보는 이시다. 

만화는 평범한 20대 초반의 주인공 이시다를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 혼자의 일상, 여성으로서의 고민을 솔직하고 

예리하게 드러낸다.


친척들은 거의 교류가 없고, 가족이라도 학교를 따라 직장을 따라 뿔뿔이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명절'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혼자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시기, 한편으로 그 어느 때보다 

혼자이고 싶어지는 시기, 이시다의 질문을 생각한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왜 누군가에겐 상처일까요?" 

/ 조남주·소설가





10일의 연휴 단숨에 읽는 10권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