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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황제펭귄 가족

바람아님 2017. 10. 6. 06:40

(조선일보 2017.09.29 신수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내 휴대폰에 남편은 '황제펭귄 오빠'로 저장돼 있다. 결혼하기 전 "황제펭귄처럼 가족을 이루자"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황제펭귄은 극한의 환경인 남극의 겨울에 알을 낳고 새끼를 양육하는 동물이다. 

설국에서 1만여 마리 펭귄이 노래로 짝을 찾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엄마 펭귄은 알을 낳으면 아빠 펭귄에게 맡기고 먹이를 비축하기 위해 바다로 떠난다.

남극의 최저기온은 영하 90도에 이르기에 알은 순식간에 얼어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아빠 펭귄은 혹한에도 꿋꿋이 발등 위에 알을 올려놓고 한철을 버틴다.


눈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펭귄들은 서로 밀착해 안과 밖의 대열을 바꾸며 체온을 유지한다.

눈과 얼음의 세상에서 갓 태어난 새끼를 지켜내려는 아빠 펭귄의 부동자세는 기적 그 자체다.


두 달여 지나 아기가 알을 깨고 나오면 아빠는 위(胃)에 남겨둔 음식물을 토해 새끼를 먹인다.

아빠는 그렇게 자신의 마지막 것을 내어준다.

그때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에서 돌아온 엄마는 자신의 짝과 새끼를 찾아내 먹이를 건넨다.

그 후 교대로 아빠와 엄마는 바다를 오가며 아기 펭귄을 키운다.


[일사일언] 황제펭귄 가족


그들이 남극, 그것도 가장 추운 겨울을 출산의 배경으로 택한 이유는 겨우내 천적이 없기 때문이고 새끼들이

품 안에서 나와 자랄 때 봄을 맞게 하기 위해서다. 죽음 같았던 계절의 대륙 위에서 맨몸으로 새끼를 지켜내는

황제펭귄의 숭고함. 그래서 황제라는 준엄한 이름이 어울린다.


"온 세상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아니할 때에 당신만이 나를 사랑하였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눈물겨운 시 구절처럼 나도 기적처럼 한 사람을 만나 가족을 이뤘으니 황제펭귄의 희생과 사랑을

되새기며 살아야겠다. 우리 발등 위에 오직 엄마·아빠만 믿고 태어난 두 마리 아기 펭귄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