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0.12 남정욱 작가)
['진주만(Pearl Harbor)']
일본 근대화 후원했던 미국, 진주만 공격으로 뒤통수 맞아… 영화에서 폭격 장면만 30분
일왕, 항복에 대한 언급 없이 "美·英·蘇·中 공동 선언 수락" 뻔뻔하고 황당하게 패전 선언
남정욱 작가
'꼭 그랬어야만 했니?' 1945년 9월 2일 미국 전함 미주리호 선상에서
항복하러 온 일본 대표단을 맞은 미국인들의 심정이 이랬을 것이다.
자잘한 지식은 네덜란드에서 왔지만 일본 근대화의 진짜 후견인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보기에 일본은 '될성부른 나무'였다. 제비 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서양 문물을 받아먹었고,
부지런한 데다 심지어 싹싹했다. 이 부지런함을 미국은 자신들의 청교도 정신으로 이해했다.
1910년까지 미국과 일본은 스승과 제자를 넘어 거의 부모 자식 관계였다.
그런데 그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댔고 결국 부모에게 사랑이 아닌 원자폭탄 매를 맞고
꿇어앉아 있는 것이다. 물론 징후는 있었다.
현대사를 꼬이게 한 세 개의 착각이 있다.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오직 자기만이 히틀러를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스탈린과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맥아더는 루스벨트를 공산주의자로 확신하고 죽을 때까지 경멸했다. 앞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일본의 조선 병합 야욕을 눈감아 주었고 러일전쟁에서는 심판을 자처하며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니었다. 근대화의 우등생이고 자신의 후계자로 여겼던 일본이 알고 보니 불량 학생에다 열등감 조절 장애 환자였던 것이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사고를 치며 미국의 환상을 깬 게 만주사변이다.
미국이 러일전쟁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일본의 침략 DNA가 그렇게 신나게 불타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라는 표현을 관습적으로 쓰는데 그건 러시아의 전쟁 스타일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러시아는 적의 병참선을 한없이 늘려 춥고 배고프게 만든 뒤 홀랑 태워 죽이는 게 기본 전략이다.
내버려두었으면 일본군은 칼바람 부는 헤이룽강 어디쯤에서 궤멸당했을 것이다.
중일전쟁이 길어지자 일본은 북진을 포기하고 '남벌(南伐)'로 정책을 갈아탄다.
'달러 공장'이라 불리던 자원 낙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유전(油田)은 남에게 양보하기에 너무나 아까웠다.
일본은 진주만을 45분간 공습했다. 사진은 영화 ‘진주만’의 한 장면.
당시 그 지역을 식민 지배하고 있던 유럽은 히틀러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문제는 미국이었다.
군사력만 열 배 가까이 차이 나는 현실. 일본은 부족분을 정신력으로 메우기로 하고 기왕 하는 미친 짓,
수십 가지 이유로 공격 불가인 진주만을 친다. 이 역발상은 제대로 효과를 본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진주만'에는 그날 아침의 지옥도가 생생하게 담겨 있는데 폭격 장면만 무려 30분으로,
실제 폭격 시간이 45분이었으니 거의 실황 중계 수준이다.
이듬해 미국은 국민 사기 진작 차원에서 일본을 보복 폭격한다.
벚꽃 대신 폭탄이 떨어져 내렸고 도쿄 시민은 자신들의 국가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영화 '진주만'에서는 이를 일급 작전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 상사에게 주인공이 하는 대답이 멋지다.
"훈장을 타게 될 위대한 작전이지만 가족이 대신 타는 작전입니다."
아시아 점령지에서 일본군은 불량 학생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여성에 대한 무단 신체 접촉은 거의 취미 활동이었는데 단, 유럽 여성은 예외였고 이를 위반하면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
자기들도 문명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 이 못 말리는 열등감.
일본 본토 상륙 시뮬레이션에서 나온 미군 피해는 적게는 50만, 많게는 100만이었다.
결국 미국은 만지작거리던 원자폭탄을 선택한다. 히로시마에 이은 2차 표적은 원래 나가사키가 아니라 고쿠라였다.
당시 원자폭탄은 육안으로 목표물을 확인하고 투하하는 수준이었고 고쿠라 상공에 구름이 많아 청명한 나가사키가
날벼락을 맞았으니 모쪼록 주민들은 날씨 원망~.
항복 문서에 서명한 이는 일왕이 아니라 육군참모총장과 외무대신이다.
'오야붕' 대신 아랫것들이 서명하는 이런 황당한 항복식이 세상에 또 있나 싶다.
대신 히로히토 일왕은 8월 15일 대국민 방송을 하는데 이게 아주 많이 웃긴다.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탈하고 영토 확장을 도모한 것은 자기 뜻이 아니었다고 시치미를 뗀 후 적(敵)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빈번히 무고한 백성을 살상하고 있다면서(얼씨구!)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패전'이나 '항복'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다. 다만 전세(戰勢)가 일본에 불리해 미·영·소·중 4국에 대하여 그 공동 선언을
수락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신민들에게는 "견디기 힘듦을 견디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것을 당부"하면서
연설 끝! 지금도 종종 뻔뻔한 소리를 해대는 일본이 하나도 안 이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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