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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스님의 강의

바람아님 2017. 10. 23. 18:02
(조선일보 2017.09.11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전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저자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전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저자

1996년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받을 때였다. 
실무 교육과 교양 교육이 번갈아 진행되는데, 한 날은 정릉의 모 사찰 주지스님이 강사로 초빙되었다. 
입교생들이 "스님이 무슨 공무원 임용 예정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지?"라고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스님이 구수한 입담으로 좌중을 휘어잡기 시작하는데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여러분, 오리무중이 뭔지 아요? 오리를 가도 중이 없는 게 오리무중이여. 
그라고, 중구난방이 뭔지 아요? 중 입은 막기 힘들다 해서 중구난방이여.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한 입교생들은 점차 스님의 말씀에 빠져든다. 
박장대소하는 고시 합격생들을 휘 둘러보더니 스님이 던지는 말씀.

"여러분들은 앞에 서 있는 이 땡추가 우스워 보이제? 나는 여러분들이 우습소. 
세상 어렵다는 시험에 붙으니 세상이 다 여러분들 것 같제? 행여 그런 생각들 마소. 
여러분들은 힘든 길에 들어선 거요. 
자기가 중심을 똑바로 잡지 않으면 권력이고 지위고 다 여러분들 인생 망치는 욕심의 근원일 뿐인게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간사해서, 출세하면 출세한 대로 마음이 더 허기지고, 
잃을 게 많으면 많은 대로 근심과 두려움도 많아지는 법이요. 
내가 무엇을 위하고 누구를 위하여 이 길에 들어섰는지 초심을 잃지 말고 욕심을 버리고 나랏일에 임하시길 바라오. 
그러면 마음이 허기질 일도 없고, 두려울 일도 없을게요."

[일사일언] 스님의 강의

마음이 허기지지 않고, 두려울 일 없는 공직 생활. 
그것이 이제 막 공직에 들어서려 하는 대한민국의 엘리트들에게 스님이 던지신 화두였다. 
공직에 있을 때는 잊고 있었는데, 공직을 그만두고 공직 밖으로 나와 보니 스님의 말씀이 더욱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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