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0.25 도진기 추리소설 쓰는 변호사)
![도진기 추리소설 쓰는 변호사](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710/25/2017102500075_0.jpg)
최인훈의 '광장'이 좋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죽 읽어나갔는데, 매사 회의적인 독고준을 주인공으로 한 '회색인'과 '서유기'는
대학 시절 가장 해로운 책이 되고 말았다. 읽다보면 해삼이 녹듯이 흐물흐물 힘이 빠졌다.
나도 모르게 무력감에 젖어갔던 것 같은데, 그걸 깨닫게 된 건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고,
그땐 그저 글이 좋아서 반복해서 읽었다.
고미카와 준페이의 '인간의 조건'을 읽은 건 제대하고 얼마 후였다. 주인공 가지는 행동파였다.
포로를 살리려 목숨을 건 한 발짝을 내딛는 장면은 '인간이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을 사서 여자 후배에게 생일 선물로 주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 후배가 뭔가 배신 비슷한 걸 하고 떠나갔다. 그래서 책을 내가 가졌다.
가진 김에 다른 책 살 돈도 없고 해서 여러 번 읽게 되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머리에 박히는 계기가 됐다.
이런 식으로 여러 번 읽었던 책이 알게 모르게 뇌리에 남았고, 지금 글을 쓰는 업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해롭다고 생각했던 독고준 시리즈도 결국 해롭지가 않았다.
![[일사일언] 여러 번 읽은 책](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710/25/2017102500075_1.jpg)
내 독서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특히 20대의 책장에는 그다지 많은 책이 없다.
그런데 그때의 책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다.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좋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 기억한다면야 물론 많은 쪽이 낫겠지만, 내 경우엔 대부분의 내용이 책장을 덮으면 휘발돼 날아간다.
여러 번 읽어야 새겨진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문장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마르크스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다 외웠다는 소문이 있는데, 아마 소문에 불과할 것 같다.
그래도 그만큼 여러 번 읽은 것 같기는 하다. 그의 유려한 글이 여기서 비롯한 게 아니었을까도 싶은데,
적어도 글 솜씨가 느는 데는 좋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쪽이 효과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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