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4] 나만의 깃발이 펄럭이는 삶

바람아님 2017. 12. 22. 07:34

(조선일보 2017.12.22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칼럼 관련 일러스트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언론사에서 종종 인터뷰 요청이 온다.

외교관 그만두고 우동 장사에 나선 경력이 특이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이나 전직을 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한마디를

해달라는 질문이 많다. 내게 그런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지혜가 있을 리

없지만, 나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는 바람으로

이런 말씀을 드린다.


"취직은 한자로 '就職'이라고 써요. 就는 '앞으로 나아가다' '먼 길을 떠나다'의 뜻이고요, '職'은 옛날 중국에서 집 대문 앞에

세워놓는 깃발(旗)을 형상화한 글자예요. 좌변의 '耳'가 깃발 모양인데,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자기가 누구인지 알리기 위해서

내건 깃발을 나타내는 '職'자가 후에 그 사람의 하는 일, 정체성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해요.


就와 職을 합쳐서 풀이하면, '자신을 상징하는 깃발을 내걸고 먼 여행을 떠나다'는 의미가 되지요.

생각보다 심오한 뜻 아닌가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취직을 그저 다닐 직장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就職'은 '取職'이 아닌데 말이에요. 취직이라는 말의 본래 뜻을 생각해 본다면,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지

젊을 때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적성을 찾으려 하지 않겠어요? 지금 젊은 세대에는 그러한 준비 과정을 위한

여유가 없는 환경이라 안타까워요. 기성세대의 할 일은 청년들이 그러한 고민과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요."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청년실업 대란 시대에 한가한 소리 하고 있다고 핀잔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원점으로 돌아가 근본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넓은 길, 평탄한 길도 좋지만

좁은 길, 험한 길일지라도 나만의 깃발이 펄럭이면 그것도 의미 있는 삶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