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일사일언] '오지선다'와 나만의 관점

바람아님 2017. 12. 25. 07:40

(조선일보 2017.12.25 최혜진 '명화가 내게 묻다' 저자)

최혜진 '명화가 내게 묻다' 저자최혜진 '명화가 내게 묻다' 저자


명화 이야기를 나누는 강연에서 청중에게 질문을 받았다.

"보여주신 작품을 보면서 '무기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는데, 화가는 '심심함'을 표현하려던 것일 수

있잖아요. 그러면 제가 그림을 오해한 것 아닌가요?"

오지선다형 시험지의 검은 주술이 기억 저편에서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별다른 사교육 없이 자란 나는 인생 첫 번째 미술·음악·문학 경험을 모두 학교에서 했다.

문학 시간에는 중요 시어에 밑줄 치고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조국'인지 '연인'인지 따졌고,

미술 시간에는 예술 사조와 작품 주제를 달달 외웠다. 정답이 단 한 개뿐인 시험지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예술가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창작하고, 그 심오한 뜻을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있으며,

둘이 합의한 감상의 정론이 존재하니 보통 사람은 일단 따르라는 메시지,

자기 느낌을 발언하려면 일정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합의였다.


개개인의 마음의 반응보다 작가 의도를 먼저 챙기도록 교육받고, 그게 습관이 돼 우리는 자주 '내 느낌이 맞을까?'

두리번거린다. 정답 없는 상태가 생소하고 불편한 것이다. 요점 정리된 지식을 손에 쥐어야 안도하는 경향 역시 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세계 150여 개 미술관 소장품 3만점을 초고해상 이미지로 제공하는 구글 아트 프로젝트 사이트에 가보면 우리가 앞으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뭔지 자연스레 느낄 수 있다. 연대·재료·화가·사조별 작품 분류 기능은 물론 머신 러닝을 하는

수퍼컴퓨터가 이미지를 분석해 스스로 태그도 달고, 비슷한 색조를 지닌 작품만 추려내기도 한다.

지식의 총량 면에서 본다면 한 명의 인간이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방대한 세계다.


객관화된 지식이 많음에도 구글 수퍼컴퓨터는 사안을 해석하거나 주장하거나 입장 표명을 하지 못한다.

관점이 없어서다. 관점을 만드는 원재료는 데이터로 변환할 수 없는 작고, 미비하고, 제멋대로인 주관적 느낌이다.

작품과 마주쳐 나오는 솔직한 반응 안에 가장 소중한 게 숨어 있다.

오해? 좀 하면 뭐 어떤가. 모르긴 해도 작가는 감상자 저마다의 해석이 반가울 것이다.

무엇보다 지식은 검색으로 대체될 수 있어도 개개인의 마음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