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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나와의 겸상이 어색하지 않은 공간, 맛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순간

바람아님 2018. 1. 20. 16:35

(조선일보 2018.01.20 박준 시인)


[시인 박준의 酒방] 여의도 화목순대국


불편한 혼밥도 혼술도 불편하지 않은 이곳
한그릇 먹고 땀을 닦으면 또다른 혼자에게 전화하고 싶은 곳
밥 먹었어? 챙겨 먹어

아무리 반복해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도 그중 하나다.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을 때 차분하고 평화로운 기분이 드는 것과 달리 밖에서 혼자 밥을 사 먹을 때에는

불안하고 쫓기는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나는 혼자 외출했을 때 자주 끼니를 거른다.


여의도 화목순대국
박준 제공


왜 나는 소위 '혼밥'을 어려워하는 것일까. 이유를 헤아려보자면 여럿이다.

먼저 나는 타인의 눈치를 자주 살피는 편인데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주변 상황과 사람들이 더욱 의식된다. 마치 문명 이전

야생에서의 인류가 사주를 경계하며 식사를 하던 풍경처럼. 아울러 식당에서는 혼자 오는 손님을 그리 반기지 않을 거라는

걱정도 한몫한다. 물론 요즘에는 혼자 오는 사람들을 배려해주는 음식점도 많다.

한 번에 여러 메뉴를 맛볼 수 있는 1인 세트 메뉴가 있는가 하면 도서관처럼 칸막이를 설치해 1인 전용 좌석을 만들어놓은

곳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식당에서는 2인 이상만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있고 북적북적한 식사 시간에 네 명이 앉는

테이블에 외따로이 앉아 공연히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날이 있다.

생각보다 일이 늦어져 외출 시간이 길어졌을 때, 그래서 커다란 허기를 마주했을 때, 혼밥의 불편함보다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더 절실하게 다가올 때. 이런 날 나는 서울 여의도 '화목순대국'을 찾는다. 식사 시간에는 주변 빌딩에서 나온

직장인들로 줄을 길게 서야 하지만 한두 시간 정도 일찍 가거나 늦게 찾으면 한적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만약 이 허기가 늦은 밤에 찾아온다 하더라도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 날에는 여의도 본점 대신 24시간 운영하는 광화문점으로 찾아가면 되니까.


여의도 화목순대국 위치도
'화목순대국'에서는 기호에 따라 세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순순대탕'은 소창순대만을 넣은 것이고 '순댓국'순대와 머리 고기

그리고 내장이 모두 섞인 것, 그리고 '내장탕'에는 곱창과 돈태반을 비롯한

내장만 들어 있다.

이것에 더해 토렴식으로 밥이 말아져 나오는 것과 공깃밥이 따로 나오는 방식까지

결정할 수 있으니 경우의 수는 더 다양해진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주문한 순댓국이 나오면 진하고 구수한 맛의

돼지 사골 국물을 먼저 한술 뜨게 된다. 흰 국물이 나오고 거기에 '다대기'를 넣는

일반적인 순댓국집과 달리 이곳의 국물은 미리 다진 양념이 풀어져 붉은빛을 띤다.

이 얼큰함의 힘이 고기와 내장의 잡내를 잡고 풍미를 한결 진하게 만든다.

반찬으로 썰려 나오는 청양 고추와 흰 대파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뜨거운 국물 탓인지 아니면 푸짐한 건더기 탓인지

이곳의 순댓국을 먹고 있노라면 오로지 먹는 일에만 집중을 하게 된다. 별다른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뒤늦게 이마에 맺힌

땀 같을 것을 닦으며. 그러고는 계산을 하고 다시 길로 나설 때 먼 곳에서 혼자 지내는 이에게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진다.

'밥 먹었어?'로 시작해서 '밥 잘 챙겨 먹고 지내'로 말을 맺게 되는 통화.


화목순대국(02-780-8191), 일요일 휴무,

순댓국(7000원), 술국(1만8000원), 머리 고기(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