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진오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바람아님 2018. 1. 28. 09:23
연합뉴스 2018.01.27. 09:30

1월 27일에는 이런 일이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국립중앙박믈관]

(서울=연합뉴스) "애국가는 국가(國歌)가 아니다."

2012년 6월, 당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한 말입니다. 엄청난 폭풍이 일었습니다. 알다시피 이 의원은 이후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재판 중입니다.

'애국가 발언' 뒤 애국가 제창하는 이석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구한말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고 문호를 개방하면서 애국애족 의식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가사나 곡조가 다른 여러 애국가가 등장합니다.

1902년 1월 27일은 고종황제가 국가 제작을 선포한 날입니다. 고종의 명에 따라 학자들이 모여 곡을 만들며 작곡은 당시 조선 궁중 음악을 잘 알던 독일인 에케르트에게 맡겼습니다. 이로써 '대한제국 애국가'가 만들어졌습니다.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 [국립중앙박물관]

지금의 애국가는 윤치호가 지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에 맞춰 불렀습니다. 제대로 곡을 붙인 이는 안익태입니다. 193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중이던 그는 '코리아 판타지'를 작곡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국가로 지정됐습니다.

윤치호와 윤치호 친필 추정 애국가 [연합뉴스 자료사진]
1977년 7월 안익태 국립묘지 안장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곡은 개인의 창작물입니다. 그래서 사유 재산입니다. 원래 안익태 사후 50년이 되는 2015년까지 저작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었으나, 2005년 방한한 유족 롤리타 안 여사는 "애국가는 한국인의 것"이라며 저작권을 정부에 기증했습니다.

정부는 2010년 7월 제정한 대통령 훈령 '국민의례 규정'에서 '애국가 제창' 항목을 뒀습니다. 하지만 법률적 근거는 없습니다. 일부 의원들이 '대한민국 국가는 애국가로 한다'라고 규정한 법안을 꾸준히 발의하고 있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1942년의 안익태와 2011년의 롤리타 안 여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1944년에 미국에서 제작ㆍ발간된 영문 애국가 악보 [연합뉴스 자료사진]

1814년 9월, 미-영 전쟁 때 미국의 시인이며 법률가인 프랜시스 스콧 키는 휴전 교섭을 위해 영국 군함에 있었습니다. 밤새 볼티모어 매킨리 요새에 퍼붓는 포격을 지켜보았습니다. 여명이 밝을 무렵 그는, 포격을 이겨내고 요새에서 휘날리는 미국 국기를 보고 감격에 겨워 즉석에서 시를 썼습니다. 지금의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입니다.

이 시는 '천국의 아나크레온에게'(To Anacreon in Heaven)라는 곡조에 붙여졌고, 1931년 후버 대통령의 요청으로 공식 국가가 됐습니다.

미국 국가 가사 [인터넷 커뮤니티]

"일어서라 조국의 젊은이들, 영광의 날은 왔다…적들의 더러운 피를 밭고랑에다 뿌리자!"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입니다.

1792년 4월, 프랑스는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선전포고했습니다. 공병 장교 루제 드 릴은 스트라스부르 숙소에서 하룻밤 사이에 신들린 듯이 가사와 곡조를 써내려갔습니다. 정식 국가로 채택된 것은 1879년입니다.

'라 마르세예즈' [프랑스 국립 박물관]

'의용군 행진곡'은 중국 국가입니다. 1935년 중일전쟁 때 상하이의 극작가 톈한은 항일을 주제로 한 영화 '풍운아녀(風雲兒女)'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여기에 중국 3대 작곡가 녜얼이 곡을 붙였습니다.

의용군 행진곡 제창 [연합뉴스 자료사진]

1949년 9월, 신중국 건설 직전 이 곡이 국가로 채택됐습니다. 문화혁명 때 가사가 바뀌기도 했으나 1982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원래 가사를 찾았습니다.

한 나라의 국가는 그 나라 항쟁의 역사에 스민 혼의 산물입니다.

doh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