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_조선일보 2013.10.22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요즘 진짜 잘나가는 배우 하정우는 어느 맥주 광고에서 맥주의 생명은 몰트와 홉의 완벽한
비율이라며 그 둘이 격렬하게 차오르며 부드럽게 감싸 안을 때 피어나는 거품이 맥주의 깊은 맛을
만들어낸다고 너스레를 떤다. 실제로 맥주의 고장 독일에서는 거품이 전체의 30%가 돼야
진정한 맥주 맛이 난다고 한다. 맥주는 거품이 예술이다.
그런데 거품이라면 질색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경제 분야이다.
이른바 시장가치가 내재가치보다 과대평가되면 거품경제가 형성되는데 불균형한 과잉투자로
시장 안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기겁을 한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취업률이 낮아지기 시작하면 사회의 수요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는 시장경제의 논리가 교육에까지 거침없이 날아든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에서 언제 수요와 공급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적이 있는가?
폐쇄경제 체제라면 모를까 공급 경쟁 없이는 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모름지기 넘쳐야 흐르는 법이다.
진화에서 거품은 기본이다. 자연은 지극히 낭비적인 삶의 방식을 택했다.
조개나 산호 같은 해양무척추동물들은 엄청나게 많은 알을 낳지만 그중에서 성체로 자라는 개체는 종종 1%도 채 되지
않는다. 식물도 엄청나게 많은 씨를 뿌리지만 극히 일부만 발아하여 꽃을 피운다. 몸집이 큰 생물일수록 자식을 덜 낳지만
확실하게 기를 수 있을 만큼만 낳아 모두 성공적으로 길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모하리만치 많이 태어나고 그중에서 특별히 탁월한 개체들만이 살아남아 번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바로 자연선택의
힘이 발휘된다. 그 결과로 적응 진화도 일어나는 것이다.
다윈은 자연선택의 개념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마지막 단서를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찾았다.
조물주 없이도 자연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건 바로 거품 덕택이다.
그런데 왜 맬서스의 이론은 자연계에서는 거품을 인정하면서 경제계에서는 윤허하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해도 거품 빠진 맥주는 정말 못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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