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5.3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환경부의 멸종위기종 관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프로젝트가 어언 10년째를 맞고 있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지리산에 풀어놓은 곰들이 야생에서 번식에 성공한 것만 보더라도 일단 첫 고비는 넘은 셈이다. 이제 반달가슴곰의 '최소생존 개체군'을 지탱할 수 있도록 지리산 생태계를 보다 풍요롭게 보전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더 큰 숙제이다.
지난 2월에는 반달가슴곰 복원센터에서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나는 과정이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그런데 이 동영상에서 우리는 사산(死産)한 한 마리의 새끼를 어미가 먹어 치우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 기이한 행동을 두고 그대로 두면 죽은 새끼의 썩는 냄새로 인해 천적에게 노출될 위험이 있어 스스로 먹어 치운다는 설명이 주어졌지만, 이를 검증하려면 좀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영장류의 조상쯤으로 여겨지는 나무타기쥐(Tupaia) 사회에는 암컷들간의 서열이 뚜렷하여 만일 운 나쁘게 으뜸암컷과 같은 시기에 임신을 한 버금암컷들은 대부분 아예 유산을 하고 태아의 영양분을 재흡수한다. 혹여 유산을 하지 못하고 출산을 하게 된 어미는 갓 태어난 새끼를 곧바로 먹어 치운다. 인간의 윤리 기준으로 보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영양 섭취의 관점에서 보면 엄연히 내가 투자한 영양분을 남에게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무타기쥐 암컷들은 이런 비정한 과정을 숱하게 겪으며 높은 서열에 오를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반달가슴곰은 산림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거의 최상위권의 동물이다. 천적이 두려워 자기 자식의 사체를 황급히 먹어 치울 필요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죽음을 정신문화와 의례 행위 수준으로 승화시킨 유일한 동물이다. 화석 자료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도 장례 의식을 치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교토대학 영장류연구소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서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침팬지들이 죽은 새끼의 시체를 바싹 마른 미라가 될 때까지 길면 두 달씩이나 들고 다니며 파리를 쫓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죽음을 대하는 동물들의 다양한 태도에도 흥미로운 진화의 역사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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