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04.19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지난주 4월 15일자 과학학술지 '네이처'에는 부모가 둘이 아니라 셋인 아기의 탄생 가능성을 보여주는 논문이 실렸다. 우리 세포에는 핵 안에만 DNA가 있는 게 아니라 세포의 에너지 공급소인 미토콘드리아에도 별도의 DNA가 들어 있다. 그 옛날 자유생활을 하던 에너지 충만의 박테리아가 다른 세포의 세포질 안으로 들어가 공생을 하게 되면서 이 같은 한집안 두 살림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수정과정에서 남성의 역할은 자신의 DNA의 절반을 정자에 실어 난자에 전달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온전히 여성에서 여성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만일 산모의 미토콘드리아 DNA에 악성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그대로 아기에게 전달된다. 실제로 이 같은 미토콘드리아 관련 유전질환은 250명에 1명꼴로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며 신경, 근육, 심장 이상에서부터 청각장애와 당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을 야기한다. 인공수정을 통해 얻은 부부의 핵을 정상적인 미토콘드리아를 가진 다른 여성의 난자로 이식하는 데 성공한 영국 뉴캐슬대학의 이번 연구는 미토콘드리아에 유전적 결함을 가진 많은 여성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차 이런 방식에 의해 태어날 아기를 둘러싼 생명윤리 논쟁이 만만치 않다. 어머니 아버지가 각각 한 분씩인 우리들에게는 이처럼 부모가 셋인 상황은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몇 년 전 스위스 로잔대학교 켈러(Laurent Keller) 교수의 연구진은 미국 남서부에 사는 '수확개미'에서 양성(兩性)이 아니라 삼성(三性) 또는 사성(四性) 체계를 발견했다. 수확개미의 여왕은 두 종류의 수개미와 짝짓기를 한다. 차세대 여왕개미를 생산하기 위해 짝짓기해야 하는 수개미와 일개미를 낳기 위해 짝짓기해야 하는 수개미가 다르기 때문에 결국 세 종류의 부모들이 필요한 것이다. 잡종 수확개미 사회에는 네 종류의 부모가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진딧물이나 물벼룩처럼 처녀생식을 하는 생물의 경우에는 부모가 하나뿐이다. 이처럼 자연생태계에서 부모의 수는 하나에서 넷까지 다양하다. 생물계 전체로 볼 때 부모가 둘인 상태는 보편적인 현상일 뿐 반드시 가장 바르고 떳떳한 상태, 즉 정상(正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其他 > 최재천의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35] 코끼리 (0) | 2013.10.15 |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1] 반달가슴곰의 삶과 죽음 (0) | 2013.10.13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1] 세대 (0) | 2013.09.14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4] 태양광 돛단배(solar sail) (0) | 2013.09.05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3] 단풍 (0) | 2013.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