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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OECD총장의 충고 '텐, 포, 텐'

바람아님 2018. 3. 5. 08:24

(조선일보 2018.03.05 손진석 파리특파원)


손진석 파리특파원손진석 파리특파원


"텐, 텐, 텐."

얼마 전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을 인터뷰했을 때 부(富)의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방도가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구리아 총장은 숫자 '10'을 세 번 외쳤다.


"소득순으로 상위 10%가 하위 10%보다 10배 많은 돈을 버는 게 OECD 회원국 평균이에요.

'텐, 텐, 텐'이죠. 그런데 한국은 '텐, 포, 텐'이라는 거 알고 있나요?"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상위 10%가 하위 10%보다 4.4배 많이 번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는 "한국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다른 나라보다는 (소득이) 불평등한 정도가 절반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임금 격차 해소가 급선무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구리아 총장은 우리 정부가 기(氣)를 쓰고 밀어붙이는 최저임금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최저임금은) 근로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제도예요. 하지만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높으면 인건비 부담을 키워 오히려

일자리를 줄어들게 하는 역설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많이 올린다고 능사(能事)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그는 우리 정부가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이야기했다.

"한국은 노인 빈곤율이 회원국 최고치인 48%에 이릅니다. OECD 평균치의 4배에 해당하죠.

남녀 간 임금 격차 역시 회원국 중 가장 큽니다. 다른 OECD 회원국들보다 차이가 큰 지표에 관심을 둬야 합니다."


구리아 총장의 지적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현 정부의 핵심은 옛 운동권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우려에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안을 밀어붙이려고 사력을 다하는 것은 다분히 이념의 색채가 짙은

결정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자본가 대(對) 노동자'의 도식이 뚜렷한 것 같다. 그것도 무대를 국내로만 한정해놓고

세상 변화에 귀를 막는다는 의심이 든다.


세계 각국은 '기업이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이치에 맞춰 정치와 경제가 함께 기업 친화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기업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고 경쟁한다.

지금 집권 세력은 이걸 모르는지,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것인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


구리아 총장의 얘기대로 근로자만 약자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노인, 여성, 장애인, 중소기업 등 다양한 층위의

약자(弱者)가 퍼져 있다. 그러나 현 집권 세력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심각한 노인 빈곤율이나 남녀 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만큼 기를 쓰고 매달리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오래전 기억에 얽매여 최저임금이란 한 조각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국정을 운영하려면 과거에서 탈피해 큰 그림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