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탄생 내력 때문일까, 노벨상 6개 부문 중 평화상만큼 뒷말이 많은 것이 없다. 정치·시대적 상황이 얽혀 이런저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1974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일본 총리(1964~72년 재임)의 수상은 노벨 평화상 최대의 오류로 꼽힌다. 그는 재임 중 “핵을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표명해 상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닉슨 미 대통령과 “유사시 핵무기의 오키나와 미군 기지 반입을 허용한다”는 비밀협약을 체결했다. 핵무기 보유는 않겠지만, 제조 능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외무성 보고서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현 총리의 외종조부답게 본색은 핵무장론자였으나 이를 숨겼던 것이다.
1994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및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과 공동 수상했을 때는 한 심사위원이 “테러리스트에게 상을 줬다”며 사퇴했다. 73년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베트남 평화협정을 이끈 공로로 상을 받았으나, 공동 수상자였던 레둑토 베트남 정치국원은 “조국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레둑토의 말대로 베트남은 곧바로 다시 포연에 휩싸였다. 대통령 취임 첫해, 핵 감축 노력을 이유로 수상한 버락 오바마는 “업적이 아니라 말로 상을 받았다”는 비아냥을 샀다.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평화상 대가로 북한의 핵 개발 시간만 벌어줬다는 공세에 시달렸다.
남북과 북·미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벌써 노벨 평화상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문재인 대통령, 트럼프, 김정은의 공동 수상이 거론되기도 한다. 수십 년간 한반도를 뒤덮었던 핵 위기가 일거에 해결된다면 노벨상 아니라 뭔들 아까우랴.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높고, 가야 할 길은 멀다. 행여나 미국과 북한 사이에 끼여 갈지자를 걷지 않을까도 걱정이다. 실패하면 지금보다 더 가파른 벼랑 끝이다. 강력한 무기가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노벨의 신념이 다시 소환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성공하면 뒷말 없는 ‘클린 노벨 평화상’은 덤으로 딸려올 것 같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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