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삶의 향기] 막장과 희망

바람아님 2018. 3. 28. 07:24


중앙일보 2018.03.27. 01:51

 

막장드라마 뺨치는 권력형 비리와 추행들
참담함 딛고 우리 사회 새 출발 계기 되길
고선희 방송작가·서울예대 교수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문화예술계와 정계와 심지어 교육계까지, 아직 의혹 상태인 경우도 있지만 연이어 드러난 권력형 비리와 추행은 대다수 평범한 시민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기고 있다. 숨 쉴 틈 없게 자극적인 장면들로 이어지는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욕하면서도 묘하게 중독된다는 ‘막장드라마’는 2000년대 후반 ‘조강지처 클럽’과 ‘아내의 유혹’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부터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내의 유혹’은 특별히 더 강렬했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이름만 바꿔 나타난 민소희(장서희 분) 캐릭터는, 개연성 없는 파격적 전개와 함께 ‘막장’이라는 코드를 대중문화 곳곳에 확산시키는 결정적 기능을 했다. 막장이란 말이 여러 곳에 자주 쓰이게 되자, 당시 석탄공사의 사장은 각 언론사에 이런 호소문을 보내기까지 했었다. “막장은 폭력과 불륜이 난무하는 곳이 아니라 에너지 자원을 캐내는 숭고한 산업현장이자 진지한 삶의 터전입니다. 제발 막장이란 단어를 함부로 쓰지 말아주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장은 십년이 흐른 지금 한국 TV 드라마의 한 장르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십년 전 석탄공사 측의 하소연이 무색할 정도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인 고흐에게도 막장의 의미는 지금의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이십 대 초반, 신학을 공부하던 그는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종교인이 되고자 벨기에의 가난한 탄광촌 보리나쥬에 머물렀다. 하지만 고흐는 그곳 탄광의 너무나 열악한 현장을 목격한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전기 작가 어빙 스톤이 쓴 고흐의 일대기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에서는 그때의 고흐 심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통로를 따라 점점 밑으로 내려갈수록 굴들은 작아지고, 마침내 광부들은 누워서 팔꿈치만으로 곡괭이를 휘둘러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광부들의 체온이 굴 안의 기온보다 높아지고 석탄 먼지가 허공에 자욱해져서, 그들은 계속 헐떡거리면서 뜨겁고 검은 검댕을 한입씩 들이키는 수밖에 없었다.” 갱도의 끝 막장에 이르렀을 때 고흐는 결국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온다.


“빈센트는 위층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뱃속이 따뜻하고 넉넉했다. 침대는 넓고 편안했다. 시트는 깨끗했고 베갯잇이 씌워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거짓말쟁이며 비열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광부들에게는 가난의 덕을 설교하면서 자신은 안락과 풍요 속에 살고 있는 것이었다.”


고흐는 그날로 안락한 숙소를 벗어나 허름한 오두막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가난한 광부들과 함께 살면서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에게 막장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암담한 절망의 지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의 지점이기도 했던 것이다. 막장을 기점으로 그의 삶은 운명적 전회를 한 셈이다.


요즘 뉴스들로 인해 다수의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이 받은 충격과 배신감은, 욕하면서도 본다는 막장드라마를 볼 때의 심정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 이상 갈 데 없는 막장에 다다른 듯 암담하다. 하지만 눈 감고 피하거나 그냥 덮고 갈 일들은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그동안 막장드라마에서나 봤던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져 왔다면 그래서 지금이 거의 막장에 다다른 기분이라면, 이 참담함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몇 번의 이사를 계기로 가진 책을 거의 다 버렸는데도 고흐의 전기는 버리지 못했다. 이렇게 다시 펼쳐볼 날이 올 걸 알았나 보다. 누렇게 바랬지만 표지만은 고흐의 아이리스 그림으로 가득해 여전히 파릇한 이 책을 보며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가 보는 막장이 새로운 희망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갈 데까지 갔으니 이제 희망으로의 전회만 남은 그런 막장이었으면 좋겠다. 보리나쥬 탄광에서의 고흐처럼.


고선희 방송작가·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