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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 밀실 '담판 외교'의 유혹

바람아님 2018. 5. 4. 06:55

(조선일보 2018.05.04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양자 정상회담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의제 전반의 관계자들이 배석하는 확대 정상회담, 소수의 측근만 배석하는 단독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단독 정상회담 중에서 최측근마저 뿌리치고 정상끼리만 따로 만나는 것을 외교가에서는 흔히

'테트아테트'라고 한다. 프랑스어의 'tête-à-tête'에서 유래한 말로 'head to head'의 의미이다.


여간 비밀스러운 내용이거나 긴밀한 관계가 아니면 정상들이 테트아테트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테트아테트 개최 자체가 비밀인 경우도 많고, 알려졌더라도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 밀실 '담판 외교'의 유혹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도보다리에서 둘만의 대화를 나눈 것도 일종의

테트아테트라고 할 수 있다. 두 정상이 호젓한 산책로를 거닐며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는 모습은 세계인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에게 배석자 없는 '1대1 담판'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당시 지명자)이 김정은을 만나 트럼프의 이런 의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테트아테트 형식의 담판 외교를 제안하는 것은 현대 외교사에서 드문 일이다.


과시욕과 모험적 성향이 강한 지도자일수록 꽉 막힌 외교 현안을 정상 간 담판으로 풀고자 하는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그 유혹이 때로는 치명적일 수 있다. 테트아테트는 기본적으로 밀담이다.

은밀한 거래가 오갈 수도 있고, 보좌진이 있다면 피해갈 수 있는 함정에 빠질 위험도 있다.


공식 기록의 부재는 아전인수 해석과 추후 분쟁의 소지를 남기기도 한다.

당사자 간에 신뢰가 없으면 그런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북핵 폐기 문제는 한국으로서는 더 이상 실패를 허용할 수 없는 사활적 이익이 걸린 문제다.

자칭 타칭 '거래의 달인'이 테트아테트 담판 외교에 의욕을 보인다니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직은 평화의 도래를 목청 높여 노래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