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부채가 화근이다. 아르헨티나는 외국계 자금 유출이 본격화하면서 페소화 가치가 폭락했다. 물가는 폭등해 경제는 패닉으로 치닫는다. 정책금리를 40%까지 끌어올렸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300억달러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아르헨티나 위기는 지난 12년간 좌파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과 퍼주기식 복지에서 비롯됐다. 국가부채와 외채가 급증, GDP 대비 재정적자는 6.1%까지 치솟았다. 경제 기초체력이 취약한 신흥국으로 파장이 확산한다. 피치와 S&P는 브라질 국채 신용등급을 정크등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글로벌 투자회사는 신흥국에서 미국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자금을 옮긴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연 3%에 도달했다. 달러화 가치도 강세로 돌아섰다. 신흥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면 달러 표시 부채 상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된다. IMF는 미국 통화긴축으로 올해 최대 1000억달러가 신흥국에서 빠져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위기 ‘10년 주기설’이 고개를 든다.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2~3년 뒤 세계 경제성장세가 꺾이고 글로벌 증시도 조정받을 것으로 점친다. 월가 전문가 59%는 2020년부터 미국 경제가 침체로 들어가리라 예상한다. 돈의 힘에 올랐던 글로벌 주가가 30% 이상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남미에서 시작된 환율 불안은 터키, 러시아, 폴란드 등 동유럽을 거쳐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와 파키스탄, 이집트, 카타르, 남아공 등 취약국으로 번진다. 여러 경제지표가 동시에 나빠지며 글로벌 위기를 예고하는 빨간불이 켜졌다. 첫째, 배럴당 80달러에 육박한 국제유가는 경기 침체에 선행한다. ‘이란 리스크’로 내년에는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경기 부양을 위해 풀린 돈의 힘으로 주택과 주식 등 글로벌 자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 거품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셋째, 미국발 금리 상승 확산은 투자와 소비 등 민간부문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넷째,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은 세계 경제성장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한국 경제는 어떤가? OECD가 발표한 3월 기업심리지수는 98.44로 조사 대상 31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제조업 경기를 대변하는 공장 가동률은 같은 달 70.3%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9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설비 투자는 3월 한 달 만에 7.8%가 줄었다. 반도체 호황에 가려 있던 한국 기업의 취약한 실력이 점차 제 모습을 드러낸다. 4월 수출은 1.5% 감소하며 18개월 만에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였다. 취업자 수는 3개월 연속 10만명대에 머물렀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로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금리 인상 압박은 가중된다. 가계부채는 1400조원을 웃돌며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과열됐던 부동산 가격도 강력한 정부 대책에 조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기가 다가온다. 복지를 중심으로 재정지출이 늘어나며 재정건전성은 나빠진다. 경기 부진이 침체로 돌변할 가능성이 점차 커진다. 한반도에 불어오는 평화 무드에 도취돼 경제·산업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을 무시하다가는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정부·기업·개인 모두 경계감을 바짝 높여야 할 때다.
[주간국장·경제학 박사 kyh@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9호 (2018.05.23~05.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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