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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긴급 점검] 미국과 통화스와프 없으면 한국도 안심 못한다

바람아님 2018. 5. 15. 14:19

중앙일보 2018.05.15. 00:09


미국 경기회복이 신흥국 위기 촉발
경기과열 우려에 금리 인상 나서자
경제 취약한 국가들 금융시장 휘청
중국 등과 통화스와프 맺었다지만
미국·일본 등과 없으면 효과 적어
과잉 복지와 재정악화가 위기 불러


신흥국 6월 위기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촉발한 ‘신흥국 긴축발작(taper tantrum)’이 심상치 않다. 아르헨티나·브라질·터키·러시아에서 시작된 통화 가치 폭락이 다른 신흥국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급기야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300억 달러 규모의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 여파가 조만간 한국에도 밀려들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아마존의 나비가 퍼덕거리면 몇달 후 텍사스에 폭풍우가 밀려온다는 ‘나비효과’로 볼 때 신흥국 통화 불안의 전염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시장 상황과 전문가 진단을 통해 ‘신흥국 6월 위기설’을 긴급 점검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TV 앞에 서야 했다. IMF에 SOS를 치기 위해서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도 페소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고 주가가 급락함에 따라 IMF와 대출 협상을 시작했다.”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이다. 이 장면은 1997년 말 한국을 덮친 ‘IMF 사태’의 데자뷔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나라 곳간(외환보유액)이 바닥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국인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기준금리를 올려도 소용이 없었다. 시장금리가 20% 이상 치솟고 환율은 2000원을 뚫고 올랐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금 아르헨티나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지난 4일 페소화의 기준금리를 40%로 올렸지만 페소화 가치 하락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충격은 나비효과처럼 빠르게 국경을 넘고 있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급락하고 터키 리라화와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급락세를 타고 있다.


신흥국 통화 불안의 방아쇠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당겼다. 2008년 금융완화를 시작한 미국은 2015년부터 입장을 바꿔 최근까지 6차례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럼에도 경기과열이 식지 않자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당장 6월을 포함해 올해 세 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시장 금리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3%를 돌파했다. 이 여파로 신흥국과의 금리차이가 좁혀지면서 미국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머니 무브’가 본격화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 6월 위기설’의 배경이다.


신흥국 외환위기는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이 경기 상황에 따라 금리의 방향을 바꿀 때마다 경제 상황이 취약한 국가부터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세계 금융의 긴축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독일 같은 경제강국은 끄떡없다. 결국 허약한 곳부터 터진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위기는 멕시코·아르헨티나에서 시작돼 태국·말레이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충격이 전파됐다.


이번에는 어느 나라가 터질까. 국제금융협회(IIF)는 달러 강세에 취약한 국가로 아르헨티나·터키·우크라이나·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을 꼽았다. 러시아·체코·콜롬비아·브라질·필리핀은 상황이 낫지만 취약성을 가진 나라로 분류됐다. 이들 국가는 재정이 나쁘거나 경상수지 적자가 크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여기에 인도네시아·베네수엘라를 추가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이 이 위기를 비켜 갈 수 있을 것인가’다. 전문가들은 이번에는 다르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을 지낸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은 “97년에는 바닥을 드러냈던 외환보유액이 지금은 4000억 달러에 가깝고, 경상수지도 흑자 흐름이다”고 말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중국·캐나다·스위스 등과 유사시 외환을 공급할 수 있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있는 것도 21년 전과 다르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안심은 금물이다.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의 출구전략에 대한 영향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지난달 21일까지만 해도 “신흥국 통화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 등 주요 선진국의 통화정책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강세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시장 코멘트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6월 위기설이 불쑥 고개를 들어 신흥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아직 한국도 미 금리 인상 여파의 무풍지대가 결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미국이 금리를 더 올려 한·미 기준금리 차가 1% 포인트 이상 벌어지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월평균 2조7000억원 이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르헨티나 사태가 한국에 던지는 교훈은 적지 않다. 산업 경쟁력 강화 없이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을 펴는 국가는 언제든 금융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사실 아르헨티나가 직면한 금융위기의 뿌리는 깊다. 1940~50년대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과 그의 부인 에바 페론의 포퓰리즘 정치가 위기의 씨앗을 뿌렸다. 이들 부부는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다면서 식량·주택·교육 등에서 보조금을 퍼주는 정책을 폈다. 이 같은 사회주의 정책과 포퓰리즘의 조합은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선진국 반열에 있었던 아르헨티나를 졸지에 만성적 재정적자 국가로 전락시켰다.


페론의 정책은 2003년 집권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과 2015년까지 집권한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에 의해 부활했다. 페르난데스는 아르헨티나 최대 석유가스 회사를 국유화하는 등 사회주의를 한층 심화시켰다. 공무원 연금과 봉급을 배로 올리고 모든 학생에게 노트북을 무상 지급했다. 이는 재정 악화를 가속화했다. 2015년 집권한 마크리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최고액권인 100페소 지폐에서 에바의 초상화를 사슴으로 바꾸고 개혁에 나섰지만 허사였다. 재정적자 탈출을 위해 국채 발행 대신 수도·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을 올리자 소비자물가가 폭등하면서다.


결국 높은 생산성과 국제경쟁력을 갖지 못한 국가는 금융위기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IMF가 경제 안정에 필요한 적정 외환보유액을 652억3000만 달러로 제시했고, 지난 3월 617억3000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외환보유액의 8%에 달하는 50억 달러를 매각해 페소화를 사들였지만 페소화 폭락이 계속돼 IMF행을 택하게 됐다. 만성적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물가가 치솟으면서 페소화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 결과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지금도 페론 부부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경제는 실패해도 국민 인기가 올라가는 포퓰리즘의 아이러니다.


■ 전문가 시각

권태신
“사상 최대 가계부채 충격 관리해야”

우리 경제가 1998년 외환위기와 같은 어려움을 당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당시와 달리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 수준이고, 경상수지는 흑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특히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기대감이 커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완화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해외자금 흐름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하려 할 경우 사상 최대 규모인 가계부채가 오히려 위기를 야기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추진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일본 등 주요 국가와 통화스와프를 추진하고, 안정적 재정 운용을 통해 해외 리스크를 줄여나가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우리나라를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드는 것이 위기 시 자금유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오정근
“유사시 대비해 미·일과 관계 중요”

아르헨티나가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브라질·러시아·터키 통화가 줄줄이 하락한 것은 상당히 위험한 전조라고 볼 수 있다. 미국발 금융 긴축 발작이 재정이나 산업구조가 건실하지 못한 국가들부터 먼저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는 항상 취약한 곳부터 먼저 시작하고 다른 나라로 전염이 된다. 돈들이 빠져나가면서 그보다 덜 취약한 나라에 들어갔던 돈도 빠져나가면서 위험이 확산되는 메커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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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년 외환위기 때도 아르헨티나·멕시코에서 먼저 시작해 태국·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갔다가 한국으로 전파됐다.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위기에 취약한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지 못했다. 외국에서 주식이나 채권 투자를 통해 돈이 들어오면 그 돈이 다 내 돈인 줄 알고 쓴 거다. 대비하지 못하면 위기가 반복된다.

우리도 완벽하게 괜찮은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형편이다. 취약 국가는 아니지만 안심할 수 없다.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역사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궁극적인 통화스와프는 미국과의 달러 스와프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미, 나아가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성태윤
"기업 수익성 개선해 외국인 머물게”

미국의 10년 장기국채 금리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3%를 넘어서자 외화표시 국채를 많이 발행했던 아르헨티나가 1차적인 위기 대상이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민간의 역할이 충분하지 못한 게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즉, 국제경쟁력을 확보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생산성을 갖춘 민간부문이 취약하다. 그 결과 정부채권을 국내 민간부문이 흡수할 여력이 없고 대부분 외화표시 형태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소화해 왔다.


한국은 남미에 대한 경제적 노출이 많지 않아 그 위기가 직접 전파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국채시장을 중심으로 금리가 상승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금리에 영향받는 부동산시장이 불안해지거나 다른 아시아권 국가가 불안해지면 한국 역시 예외가 되기는 어렵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원화 약세를 일정 부분 용인해 위기의 압력을 덜 수 있지만 미국의 환율조작국 관련 압박과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 이슈 때문에, 외환시장에 대해 그러한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환 위험요인을 감소시키기 위해 통화스와프 확대가 필요하지만, 미국과의 스와프가 아닌 이상 핵심적인 대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외환보유액의 안정적 관리와 함께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급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고, 기업의 수익성을 개선시켜 외국인 투자자금이 국내에 장기간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