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6.07 변희원 기자)
변희원 기자
세계 무대에서 '우리'가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었다.
영화에서 세상을 구하는 건 '아이언 맨' 같은 백인 남성이고, 공연장에서 격한 환호성을
듣는 건 비욘세 같은 흑인 여성이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이든, 싸이든 '우리' 가수가
세계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면 아이돌 그룹이나 가요에 관심 없던 이들까지 덩달아 기뻐한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 인정받는 게 이런 느낌일까.
갤러리 트렁크(서울 삼청동)에서 열리는 배찬효의 개인전 '서양화에 뛰어들기'엔 이상한 서양화가 걸려 있다.
르네상스 화가 퀸텐 마시스가 그린 종교화다.
아기를 안은 성모(聖母)에게 천사들이 왕관을 씌워주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한국 남자인 배찬효가 백인처럼 분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고 성모의 자리에 앉아 있다.
영국에서 빌린 무대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은 뒤 명화와 합성한 것이다〈사진〉.
배찬효는 유럽에 대한 환상을 품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아시아계 남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여기에 매겨진 계급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환상이 이뤄질 틈도 없이 소외감부터 느꼈다. 배찬효는 "부당하고 답답하게 느껴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유럽의 전통 복식을 입는 'Existing in Costume' 연작을 시작했다.
성스럽고 존엄한 그림에 난입해 훼손까지 시킨 배찬효는 시치미 뚝 떼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서양이 세계의 주체라는 편견을 뒤집는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서양인도 동양인도 아닌 '배찬효'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27일까지.
(02)3210-1233
배찬효 '서양화에 뛰어들기'展 전시일정 : 2018.06.0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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