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11.18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사)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목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무엇이 바람처럼 사라진 것일까? 19세기 영국 시인 어니스트 다우슨의 시에서 따온 이 말은 남북전쟁으로 인해 미국 남부 백인 지주층의 귀족적 삶과 고상한 문화가 파괴되었다는 의미이다.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양키 군대가 남부의 대농장들을 접수했을 때 '타라'라고 불린 자신의 집이 아직 그대로 그곳에 있는지 아니면 조지아주를 휩쓴 바람과 함께 사라졌는지 자문한다.
이 소설은 1936년에 출판되어 바로 그 해에 100만 부가 팔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30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비비언 리와 클라크 게이블이 주연을 맡은 영화 역시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대지주 가문의 철없는 아가씨였던 여주인공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자신의 사랑과 명예,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꿋꿋한 여인으로 성장해 간다.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경제적 곤경 속에 빠져 있던 당시 독자들은 강인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스칼렛 오하라에게 환호했다.
저자 마거릿 미첼은 남북전쟁과 그 이후 전개된 남부재건 조치들(남부 주들을 연방에 복귀시키기 위한 정치·경제적 개혁안)이 미국 남부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고발한다. 그 과정에서 구래의 플랜테이션 경제가 붕괴하고 기사도 문화를 지키던 고귀한 지주 귀족층도 사라져갔다는 것이 그녀의 역사관이다. 그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스칼렛 오하라로 상징되는 새로운 중산층이 주도하는 신(新) 남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재생(再生)의 스토리에서 흑인들은 뒤로 밀려나 있다. 소설과 영화에서 흑인 남성들은 우유부단하고 미숙한 사람들로, 흑인 여성들은 기껏해야 충실한 하녀이거나 하루 종일 노래 부르는 명랑한 꼬마로 그려진다. 백인 중산층이 전쟁의 참화를 털고 일어나 자립의 계기를 만드는 동안 흑인들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인종 질서 속에 다시 갇혔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지극히 인종차별적인 작품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소설 출판 75년인 올해, 그동안 바람처럼 사라진 줄 알았던 이 책의 원본 마지막 장들이 다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는 미국 역사의 내면을 밝혀주는 사료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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