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1.04.1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사)
튤립의 원산지는 파미르고원으로 추정된다. 중앙아시아 내륙 산간 지방에서 겨울의 혹심한 추위가 끝나고 마침내 봄이 찾아왔을 때 찬란한 색깔로 피어나는 야생 튤립이 유목민족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유목민들이 서쪽으로 이동해 가면서 이 꽃을 페르시아와 터키에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튤립은 터키에서 첫 번째 전성기를 누렸다. 원래 유목민족들이 생각하는 낙원(paradise)은 에덴동산과 같이 꽃과 풀이 가득한 정원의 이미지였다. 오스만제국의 술탄(sultan, 황제)들은 천국의 모습을 지상에 재현하기 위해 정원에 지극 정성을 기울였다. 시원한 샘물과 분수, 냇물이 흐르는 가운데 온갖 꽃들이 피어 있는 황제의 정원에서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꽃은 튤립이었다. 터키어로 튤립은 라레(lale)인데 이 말은 아랍어의 '알라'와 마찬가지로 신을 가리킨다. 활짝 필 때 오히려 고개를 숙이는 튤립은 신 앞에서 겸손을 지키는 꽃으로 여겨졌다.
유럽인들이 터키의 정원에서 처음 튤립을 보았을 때, 그들 역시 이 신비한 꽃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튤립이라는 말은 터번(turban)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꽃 모양이 그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16세기 중엽 튤립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모습을 드러냈고, 곧 주변 지역으로 퍼져갔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두어 제2의 고향이 된 곳이 네덜란드였다. 이 나라에 튤립이 전파된 데에 중요한 공헌을 한 사람은 저명한 식물학자인 클루시우스(1526~1609)였다. 빈과 프랑크푸르트에서 활동하던 그는 1593년에 라이덴 대학교수로 초빙되었고, 곧 이 도시에 유명한 식물원(Hortus academicus)을 건립했다. 이 식물원은 전 세계의 식물 자원을 조사하여 유럽 각지에 보급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발전했다. 클루시우스는 라이덴에 튤립 구근을 가지고 와서 재배했는데, 여기에서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나자 주변 지역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취해 튤립 구근을 훔쳐가서 재배했다. 이 꽃들이 퍼져 봄날 네덜란드의 들판을 아름답게 수놓게 되었다.
오늘날 튤립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올해 한국과 네덜란드 수교 50주년을 맞아 네덜란드에서 보내준 튤립 7000송이가 서울광장에 활짝 피어났다.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튤립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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