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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78] 석양

바람아님 2013. 11. 16. 21:13

(출처-조선일보 2010.09.27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예년보다 좀 이른 추석도 지나고 억수 같은 비를 토해낸 다음이라 그런지 하늘이 유달리 창백해 보인다. 마냥 뜨겁기만 하던 햇살도 가슴팍에 내리쬐는 느낌이 다르다. 폭염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여름도 이젠 슬그머니 산모퉁이를 돌아선다. 여태껏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 분명한 진리가 있다면, 그건 제아무리 난리를 쳐도 시간이 가면 시간이 온다는 사실이다.

고형렬 시인이 "까마득한 기억의 한 티끌과 영원 저 바깥을 잇는 통섭의 시"라고 평한 황지우 시인의 '아주 가까운 피안'이라는 시가 있다. "어렸을 적 낮잠 자다 일어나 아침인 줄 알고/학교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와/똑같은, 별나도 노란빛을 발하는 하오 5시의 여름 햇살이/아파트 단지 측면 벽을 조명할 때 단지 전체가 피안 같다/…/어디선가 웬 수탉이 울고, 여름 햇살에 떠밀리며 하교한 초등학생들이/문방구점 앞에서 방망이로 두더지들을 마구 패대고 있다."

나는 하루 중 해질 무렵을 제일 좋아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삼촌들과 함께 밭일을 마치고 할머니가 감자밥을 해놓고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아른하다. 늘 바삐 돌아가는 삶이지만 눈에 드는 사물들의 윤곽이 아스라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왠지 모르게 마음도 절로 차분해진다. 툭하면 괜스레 우수에 젖는 걸 즐기는 나만 그런가 했는데 주변에 물어보니 해질 무렵을 좋아한다는 이들이 뜻밖에 적지 않다. 시간을 내어 가까운 동산에 오르거나 강변을 거닐며 지는 해를 바라보라. 석양을 바라보며 숙연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 모두의 보편적인 감성일 것이다.

'인간의 위대한 스승들'이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는 어느 동물학자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그는 아프리카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꺼져가는 석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숲 속에서 홀연 파파야 한 무더기를 들고 침팬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침팬지는 슬그머니 파파야를 내려놓더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노을을 15분 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해가 완전히 사라지자 터덜터덜 숲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땅에 내려놓은 파파야는 까맣게 잊은 채. 침팬지의 삶도 피안의 순간에는 까마득한 저 영원의 바깥으로 이어지는가? 그 순간에는 그도 생명 유지에 필요한 먹을 것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고 있었으리라.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