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도 결국 지고 만다. 그런 안타까움을 노래한 시는 동서고금에 수없이 많다. "낙양성 동쪽 복숭아꽃 오얏꽃은 날아오고 날아가서 누구 집에 떨어지나(洛陽城東桃李花 飛來飛去落誰家)….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지만 해마다 사람 얼굴 같지 않네(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당나라 시인 유희이(劉希夷)의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은 지는 꽃들을 보며 청춘도 덧없이 가고 마는 슬픔을 노래했다.
영국 시인 하우스먼도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러운((Loveliest of trees)〉이라는 시에서 그 비슷한 심사를 이렇게 표현한다.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러운 벚나무는 지금/ 가지마다 꽃을 달고 있네…. 일흔 봄에서 스물을 빼면/ 내게 남는 것은 오직 쉰뿐/ 활짝 핀 꽃을 보기엔/ 쉰 봄은 너무 짧으리니." 한창나이인 스물에 벌써 이런 시를 짓는 건 좀 성급한 것 아닐까?
하여튼 대개 꽃을 보면서 이처럼 청춘과 인생에 대한 서정을 노래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일본 제국주의는 벚꽃을 보며 하필 집단 전사(戰死)를 부추겼다. 하긴 먼 과거로부터 일본 사람들의 벚꽃 사랑에는 색다른 면모가 있었다. 일본의 무사도를 세계에 알린 대표적 저서인 니토베 이나조의 〈일본의 무사도〉는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라는 말을 소개하며, 벚꽃을 무사의 비장한 죽음과 연관지었다. 그는 영국의 장미와 일본의 벚꽃을 대비시키며, "장미는 감미로운 꽃 아래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있어 마치 생명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비판한다. 반면 벚꽃에 대해서는 "아름다우면서도 덧없이 져버리고, 바람이 부는 대로 흩날리면서도 한 줄기 향기를 흩뿌리며 영원히 사라지는" 비장미를 강조한다. 이런 죽음의 미학은 조만간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 변용된다. 일시에 지는 벚꽃을 군국주의 이념으로 찬미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즈음이라고 한다. 이제 바람결에 많은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는 것이 전쟁에서 산화하는 상징이 되었다. "일본 남아로 태어났다면 산병전(散兵戰)의 벚꽃처럼 지거라" 혹은 "천황을 위해 사쿠라가 되어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는 군가를 부르며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끌려갔다.
꽃이 무슨 죄가 있으랴, 이상한 이데올로기에 꽃을 동원한 인간이 잘못이지.
(출처-조선일보 2011.04.29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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