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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07] 태자당

바람아님 2013. 11. 15. 20:48

(출처-조선일보 2011.04.22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사)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2세(1712~1786, 일명 프리드리히 대왕)는 강력한 대내외 정책을 통해 프로이센을 강국의 반열에 오르게 한 전제 군주였다. 그렇지만 그가 원래부터 강한 성품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를 닮아 플루트 연주와 문학에 심취한 고운 심성의 소유자였다. 반면 부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군사력 강화를 제1의 목표로 삼아 '군인왕'으로 불렸고, 성격도 거칠어서 사람들 얼굴을 막대기로 때리거나 여성을 발로 차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약해빠진 아들을 다그쳐서 훌륭한 군인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권위주의적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에 괴로워하던 프리드리히는 열여덟 살에 몰래 궁정을 빠져나와 어머니의 친정인 영국으로 도주하려 했다. 자신의 단짝 친구인 폰 카테와 몇 명의 젊은 장교들이 따라나섰다. 그러나 국경 지역에서 일행 중 한 명이 생각을 바꾸어 국왕에게 보고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들은 반역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격노한 부왕은 아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그의 왕위계승권을 빼앗아 동생에게 주려 했지만, 물론 그대로 실행하기는 힘들었다. 대신 아들이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 그가 보는 앞에서 친구 폰 카테의 목을 베었다. 프리드리히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고, 이후 며칠 동안 환각에 시달렸다.

부왕은 결국 아들을 사면하여 감옥에서 풀어주기는 했지만,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대신 현지에 남아 국정 운영과 전쟁에 대해 공부하게 시켰다. 합스부르크 황실의 친척인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나와 결혼식을 올린 것도 부왕이 꾸민 철저한 정략결혼이었다. 원치 않는 결혼을 한 프리드리히는 그의 누이에게 차라리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편지를 썼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그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를 주었음이 틀림없다. 그는 차갑고 냉혹한 인간이 되었고, 아버지를 능가하는 준엄한 현실 정치인으로 돌변하여 오스트리아를 침공하고 폴란드 분할을 주도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아들과 고위 간부의 2세들이 모여 만든 사조직인 '봉화조'는 북한판 '태자당'으로 알려져 있다. 장래 북한의 실세로 자랄 가능성이 큰 이 멤버들의 해외 유람 장면을 보도하는 기사들이 무심히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