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0.10.04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우주물리학자들이 최근 지구 외에 생명체가 살고 있을 만한 가장 훌륭한 행성으로 '글리즈 581(Gliese 581)'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지구로부터 약 20광년쯤 떨어져 있는 이 행성은 무게는 지구의 서너 배 정도이며 울퉁불퉁한 암석들로 뒤덮여 있고 중력도 지구와 얼추 비슷하여 만일 우리가 그곳에 갈 수 있다면 별 어려움 없이 직립하여 걸을 수 있을 것이란다. 공전 주기는 지구보다 훨씬 짧아 고작 37일이며 달처럼 자전을 하지 않아 한 면은 언제나 밝고 다른 면은 어둡다고 한다. 연구진은 11년에 걸친 면밀한 관찰 끝에 이 행성을 발견하는 행운을 거머쥐었지만, 실제로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관찰하고 있는 행성 모두를 합쳐본들 우주 전체의 극히 일부인 걸 감안하면 궁극적으로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는 '살아 있는 행성'은 전체의 10~20%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1995년 어느 일간지에서 그 신문의 사진기자가 경기도 가평에서 찍은 '미확인 비행물체(UFO)'의 사진에 대해 나의 의견을 물어온 적이 있다. 나는 아직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튿날 아침 신문에는 사진과 함께 고 조경철 박사님의 긴 설명이 실렸고 그 아래 한 줄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 전혀 관심 없다.'
내가 외계 생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과학적인 대답을 할 수 없어 말을 아낄 따름이다. 하지만 하도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지라 얼마 전부터 나름대로 사뭇 비겁한 결론이지만 하나 갖고 있다. 무려 1000억개도 넘는 은하계가 존재하는 저 광활한 우주에 오로지 지구에만 생명이 존재한다고 우기는 것은 확률적으로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우주 어딘가에 생명이 존재하리라 믿기로 했다. 그러나 그 생명이 반드시 DNA의 복제를 기반으로 하는 지구의 생명과 동일하리라고 믿는 것 역시 확률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명체계를 지닌 존재들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이 우주선을 타고 뻔질나게 우리 곁을 다녀간다고 믿기에는 아직 이렇다 할 증거가 없다.
'人文,社會科學 > 人文,社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80] 고통과 행복 (0) | 2013.11.19 |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09] 예수와 무함마드 (0) | 2013.11.18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08] 벚꽃 (0) | 2013.11.16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78] 석양 (0) | 2013.11.16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07] 태자당 (0) | 2013.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