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8.25 이진석 논설위원)
고려대와 연세대 총장이 어제 두 신문에 각각 글을 실었다.
이번 일요일 20주기를 맞는 SK그룹 최종현 회장을 추모했다.
라이벌 관계인 두 사립대의 총장이 같은 날 같은 일로 신문에 글을 낸 것은 흔히 보지 못했다.
김용학 연대 총장은 "인재 양성에 대한 (최종현의) 의지"를 떠올렸고,
염재호 고대 총장은 "나라와 미래를 걱정한 혁신가였다"고 추억했다.
두 총장은 최종현이 세운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금 덕에 40년쯤 전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1974년 장학재단 만들 당시 SK는 10대 기업에 끼지 못하는 처지였는데도 장학금이 파격적이었다.
박사 과정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까지 줬다.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 언저리였던 시절인데 5년간 3만달러가 넘었다.
사이비 종교단체나 중앙정보부 돈 아니냐는 말이 대학가에 돌기도 했다.
회사 임원들이 "우리 형편에 과하다"고 했지만 최종현은 "돈 걱정 없어야 24시간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장학금으로 지난 44년간 해외 명문대 박사가 740명 넘게 나왔다.
▶옛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의 첫 대목을 흔히 '천둥산~'이라고 부르지만, 원래 이름은 천등산(天登山)이고 충주에 있다.
산 이름을 천지인(天地人)에서 따서 주변에 지등산, 인등산도 있는데 인등산이 유독 숲이 깊다.
최종현은 장학재단을 만들기 2년 전에 서해개발이라는 회사를 세웠고, 이 회사가 인등산 그리고 천안 광덕산,
영동 시항산 등에 330만 그루 넘게 나무를 심었다.
1200만평 넘는 민둥산과 황무지를 숲으로 만들었다. 최종현은 30년 뒤에 베어서 장학금에 쓰겠다고 했다.
▶까까머리·단발머리 고교생들이 TV에 나와 지식을 겨뤘던 '장학퀴즈'도 최종현이 뒤를 댔다.
교양 프로그램이라 광고가 어렵다고 하자 1973년부터 광고에다 우승자에게 줄 장학금까지 다 떠맡았다.
인재와 미래를 내다본 투자라고 했다.
이 프로는 1996년 MBC에서 폐지된 뒤 교육방송으로 옮겨 지금껏 이어지도록 SK가 밀고 있다.
▶최종현은 평생 사람을 키웠다. 그에겐 사람이 곧 기업이었다.
"인재 양성 100년 계획을 세워 지식산업 사회를 구축해 일등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지금은 변방의 후진국이지만, 21세기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다"고 했다.
그가 40년 전에 한 말이다.
그의 꿈처럼 나라는 커졌는데 그를 닮은 혁신가와 기업 거인(巨人)들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는가.
'時事論壇 > 橫設竪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물상] '품격의 정치인' 매케인 (0) | 2018.08.27 |
---|---|
강연재 “문재인 정부, 빨갱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 (0) | 2018.08.25 |
[만물상] 어느 아파트서 생긴 일 (0) | 2018.08.24 |
[만물상] 쓰레기통에 나뒹구는 돈 (0) | 2018.08.23 |
[분수대] J노믹스의 정신승리법 (0) | 2018.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