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8.22. 03:16
고대 중국의 진(秦)나라가 조(趙)나라를 겨냥해 소문을 퍼뜨렸다. "조나라의 염파(廉頗)는 쉬운 상대인데 만일 조괄(趙括)이 장군이 된다면 그건 큰 걱정이다." 이 말에 흔들린 조나라 왕은 염파 대신 조괄을 장수로 삼았다. 명장(名將)의 아들인 조괄은 알아주는 병법가이긴 했다. 하지만 전쟁을 장난처럼 여기는 성향이 있었다. 조괄은 진나라 군대를 무모하게 추격하다가 포위당해 대군이 몰살당했다. 그는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하는' 지상병담(紙上兵談), 탁상공론(卓上空論)의 대명사로 꼽힌다.
▶어느 나라나 새로 취임한 정권은 탁상공론이 많다. 그러다 현실의 벽에 부닥친다. 대선 공약인 대입(大入) 개편안을 밀어붙이려다 현실에 부닥치자 여론에 맡기겠다고 물러섰다. 여론의 결과는 입시에 대한 국민 견해가 제각각이라는 뻔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탁상공론 공약의 끝이 탁상공론이었다.
▶탈원전 한다고 발전 단가가 싼 원전을 세우고 연료비가 비싼 석탄·LNG발전 비중을 늘리다 보니 우량기업이던 한국전력이 상반기에만 1조원 넘는 적자를 냈다. 공기는 더 나빠지고 온실가스는 더 많이 배출하게 됐다. '탈원전' 구호는 그럴싸한데 현실의 벽에 부닥치자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다.
▶주52시간 근로제 실시와 최저임금 인상도 명분은 좋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어져 고용 대란이 벌어졌고, 일자리를 지킨 근로자들도 휴일·야근 수당이 삭감되면서 월급봉투가 얇아졌다. 퇴근 후 대리운전 같은 '투잡'으로 내몰리는 근로자도 부지기수다. '저녁 있는 삶'이라더니 '저녁에 딴 일 하는 삶'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어떤 정책도 서류 속에 있을 때는 그럴듯하다. 그런데 현실에 적용하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을 핵심으로 하는 소득주도 성장의 주창자다. 그렇게 하면 서민들이 좋아지고 경제 성장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사는 아파트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여파로 경비원 감원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116명을 64명으로 줄이는 안을 주민투표에 부친다고 한다. 그는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증거가 없는 주장일 뿐"이라고 해왔다. 하지만 경비원들이 최저임금 때문에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생생한 증거를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탁상공론' 정책은 현실에선 그 명분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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