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 박노자
국가폭력은 언제나 … 힘없는 자에게 무자비했다
(부산일보 2012-02-25 이상헌 기자)
▲ 한겨레출판 제공
17세기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의 연작 '사빈 여성의 납치와 강간'이다.
로마 건국 초기 여성이 부족했던 로마 장정들이 이웃 사빈 부족의 여성을 집단으로 납치한 뒤 사빈 부족 남성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그림이다.
약탈자의 후안무치한 행동이지만, 그림에서 성적 폭력에 대한 도덕적 책망이나 피해자의 절절한 심정에 대한 배려는 껴지지 않는다. 되레 적국 여성의 납치가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행위인 것처럼 그려졌다. 그러고 보면, 적국의 여성을 성폭행한 뒤
본국으로 데려와 소실이나 노비로 삼는 것은 드라마에서도 익히 봐왔던 풍경이다.
국가폭력은 늘 힘 없는 '타자'에게만 무자비했고, 힘 있는 자에겐 너그러웠다. 신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만 아니다.
대기업 총수의 비리엔 늘 솜방망이만 요식행위처럼 뒤따랐지만, 용산 철거민의 시위엔 쇠몽둥이가 따라왔다.
오폭으로 민간인을 대량살상하고도 미국이나 전승국이 전범 재판을 받은 적도, 앞으로 받을 가능성도 없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까?
박노자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는 국가의 계급적 속성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는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에서 "국가를 합리적인 조절자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단언한다.
국가란 태생적으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불온서적 리스트에 오를 법한 급진적인 발언을 쏟아낸다.
"자본주의 국가에 전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사냥꾼에게 불살상계를 설법하는 일과 다를 게 없다"며 피를 먹고 자라온
자본주의의 정체를 드러낸다. 긴가민가한 순간, 증거를 내놓는다. 대공황 때 23%에 달했던 미국의 실업률이 전쟁 특수와
대량 징병으로 1%로 떨어지고, 워싱턴 근로자의 실질소득도 전쟁 호경기로 42%나 늘어났다는 통계 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불편한 이야기들을 노르웨이 대학의 수업 풍경부터 삼국사기에 나오는 김유신의 꼼수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사례를 들어가면서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다.
이런 대목도 나온다. 광개토대왕의 국토 확장을 찬양하면서도 남을 침략한 적 없는 외침의 피해자로 규정한
이율배반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가 남을 상대로 벌인 정벌이 남들이 우리를 침략해 들어온 전쟁보다 덜 나빴다는
의식도 버리는 게 좋다." 부정하고 싶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픈 지적이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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