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11.30. 03:09
알고보니 대한제국때 지도 아닌 1952년 이후 지도로 만든 엉터리
정부가 지난 10월 개방한 서울 덕수궁 뒤편 '고종의 길'이 조작된 기록을 근거로 복원된 것으로 29일 본지 취재 결과 밝혀졌다. '고종의 길'은 1896년 2월 고종이 일본의 위협을 피해 경복궁에서 러시아공사관으로 피란한 '아관파천(俄館播遷)' 때 이용했다는 길이다.
지난 2016년 문화재청은 "대한제국 시대 미 공사관이 만든 지도에 (덕수궁 뒤편 미 대사관저와 선원전 터 사잇길이)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돼 있다"며 "이를 근거로 아관파천 때 고종이 이용한 '고종의 길' 복원 작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문화재청이 근거로 제시했던 '대한제국 시대 미 공사관 제작 지도'는 공사관 부지가 대사관저로 사용되기 시작한 1952년 이후 제작된 지도였다. 출처도 불분명했다. 반면 실제로 대한제국 시대 미 공사관이 작성한 지도에는 '왕의 길' 관련 언급이 아예 없었다.
문화재청이 지난 10월 개방한 '고종의 길'은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뒤편 미 대사관저와 선원전 터(옛 경기여고 터) 사이 폭 4m, 길이 120m 정도 되는 길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6년 7월 20일 "대한제국 시기에 미국 공사관이 제작한 정동 지도에는 선원전 터와 현 미국 대사관 사이의 작은 길을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하고 있다"며 이 길 복원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28일 문화재청이 본지에 공개한 '왕의 길이 표기된 대한제국 시절 지도'는 6·25전쟁 중인 1952년 이곳에 있던 미 대사관이 을지로로 이전한 뒤에 만든 지도〈지도 A〉로 밝혀졌다. 게다가 문화재청이 'King's Road'라고 해독한 부분 글자는 해독이 불가능하다. 정동 공사관 자리는 현재 대사관저로 사용 중이다.
◇차고·수영장 표시된 '대사관저' 지도
이 지도에는 한가운데 건물에 'AMBASSADOR'S RESIDENCE(대사 관사)'라고 표시돼 있다(①). 공사 관사는 'Minister's Residence'라고 표기한다. 그 아래쪽에 GARAGE(차고)와 POOL(수영장), TENNIS COURT(테니스장)가 그려져 있다. 대사 관사 왼쪽에는 CHAIN LINK FENCE(철책)가 쳐진 HOT HOUSE(온실)와 SERVANT QUARTERS(고용원 숙소)가 보인다.
지도 위쪽에는 미 대사관 직원 숙소로 사용한 건물 다섯 채가 그려져 있다(②번 영역). 미 대사관은 "이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조선저축은행 임원 관사를 광복 후 관사로 재활용한 것"이라며 "지도 원본은 찾을 수 없지만, 최소한 대사관저가 생긴 이후 지도"라고 밝혔다. 공사관 부지는 해방 후 대사관으로 쓰이다가 1952년 미 대사관이 을지로로 옮겨 가면서 대사관저로 용도가 변경됐다.
◇해독 불가능한 'King's Road'
제작 시기도 엉터리지만 지도 해석에도 문제가 있다. 직원 숙소 영역 아래에 비스듬히 직선으로 난 도로에는 'King's 0000 000000 to 00000 0000000'라고 적혀 있다(붉은 ③번). 정확하게 말하면 도로 끝 직삼각형으로 구획이 나뉜 부분에 이 표기가 붙어 있다. 문화재청은 이 표기를 근거로 "대한제국 시기 미국 공사관이 제작한 지도에 '왕의 길(King's Road)'이라는 표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문구에 나와 있는 나머지 글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 대사관은 "지도 해상도가 낮아 뭐라고 적혀 있는지 해독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미 대사관은 "이 지도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아 출처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공개한 지도는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이다.
◇'왕의 길' 없는 구한말 지도
문화재청은 대한제국 시대 제작된 또 다른 지도 사본도 공개했다〈지도 B〉. 아관파천 종료 7개월 뒤인 1897년 9월 30일 미국 공사 호러스 알렌이 본국에 보낸 '미 공사관 진입로와 주변 개략도(Rough Sketch of Surroundings & Approaches to U.S. Legation)'다. 2016년 문화재청이 '대한제국 시대 미 공사관 지도'라고 밝힌 지도가 바로 이것이다. 이 지도에는 공사관 부지 북쪽에 맞닿은 길이 '미국 공사관 사유 도로(U.S. Legation Private Road)'라고만 표기돼 있다(④번). 미 대사관이 작성한 지도 속 길(지도A)과 일치하는 길이다. 'King's Road' 문구는 보이지 않는다.
◇짜 맞춘 '결정적' 사료(史料)
아관파천 경로에 대해 학계에 추정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왕의 길'이 표기된 지도가 존재한다면 이는 파천 길을 확정하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문화재청은 2016년 '미국 공사가 만든 지도'와 '20세기 후반 미 대사관 작성 지도'를 입맛대로 뒤섞어 '왕의 길이 명기된 대한제국 시대 지도'라고 발표하고 '고종의 길' 복원 계획을 확정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당시 "근대사의 생생한 역사 현장을 보존·활용하여 서울의 문화적 가치를 더욱 높이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29일 문화재청은 본지 질의에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옛 지도 해석에 혼돈이 있었다"고 밝혔다. 복원 계획 발표 당시 문화재청은 위 두 지도를 공개하지 않았다가 본지가 요청하자 뒤늦게 공개했다.
25억 들인 '고종의 길'… 3분의 2는 그마저도 엉터리 조성
문화재청의 주장이 맞더라도 지도 위치와 3분의 1만 일치
문화재청은 2년 넘는 기간 25억원을 투입해 '역사 현장'을 복원했지만, 정말 역사를 복원했는지는 의문이다.
'고종의 길' 중앙 남쪽 길 담벼락 아래에는 우물 흔적처럼 보이는 돌 더미가 남아 있다(위 사진 오른쪽 하단). 1952년 이후 어느 시점에 미 대사관이 작성한 지도A에 따르면 이 자리에 '저수탑(Water Tower)'이 있었다(지도A 파란 동그라미). 지도 상 위치는 길 한복판이다.
사진에서 보듯, 현재 복원된 '고종의 길'에서는 이 지점에 돌 더미가 남아 있다. 그런데 이 돌 더미는 대사관저 쪽 담장에 붙어 있다. 지도처럼 길 한복판이 아니다. 또 덕수궁 방면 입구에서 이 돌 더미까지에는 길 한복판에 담장 하나가 중앙분리대처럼 복원돼 있다.
현재 공개된 '고종의 길'은 이 돌 더미부터 대사관저 쪽 담장이 급격하게 튀어나와 정동공원 입구까지 좁아진 상태로 이어져 있다. 문화재청이 '왕의 길(King's Road)'이라고 주장한 지도A 속 길에서 돌 더미~정동공원 입구 구간은 담장 너머 대사관저 담장 안쪽에 있다. 전체 길이의 3분의 2 정도다. 즉, 문화재청이 주장하는 '고종의 길' 가운데 3분의 1만 복원돼 있고, 나머지 3분의 2는 여전히 복원되지 않고 대사관저 담장 안에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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