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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古代 스파르타식 저출산 해법은 통하지 않는다

바람아님 2018. 12. 12. 07:20

(조선일보 2018.12.12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나라 장래 위해 出産'이란 발상, 아이를 국가 소유로 여기는 것
"애 낳는 노예냐?"고 반발하는 젊은 층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출산 감소 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전문가들 추산에 의하면, 한 해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조만간 30만명 아래로 떨어지고,

2026년에는 20만명이 안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0.95명이며,

이대로 가면 경제와 사회가 뿌리째 흔들리는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전쟁이나 국가적 재난의 때가 아닌 평화 시에 이런 저출산 상태가 나타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정부도 일찍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출산 장려' 정책들을 폈다.

그런데 2006년 이래 지금까지 124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였으나 출산율은 기대한 만큼 오르지 않고

오히려 계속 떨어졌다. 왜 그럴까? 문제의 성격을 잘 파악하지 못했고, 정책 방안도 조급하게 마련했기 때문이 아닐까?


국가가 젊은이들에게 아이를 더 낳으라고 무조건 강요하는 것은 고대국가적 접근 방식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재산이 거의 없는 시민 계층을 인구센서스상 프롤레타리이(proletarii)로 분류했다.

로마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을 갖추어 전투에 나가야 하는데, 그럴 정도의 재산이 없는 서민층은 아이들을

재산으로 대신 신고했다.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은 후손(proles)을 낳아 미래의 시민·병사를 제공함으로써

국가에 봉사하라는 뜻이다. 이것이 산업 자본주의 사회의 무산자 계급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의 기원이다.


스파르타는 더 극단적이다. 시민들의 일차적 의무는 건강한 아이를 낳아 강력한 병사로 키우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남성들은 일종의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

미혼 남성들은 겨울이 되면 옷을 벗고 거리를 다니며 스스로 자신을 조롱하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젊은 아내와 사는 늙은 남자는 좋은 후손을 보기 위해 맘에 드는 청년을 자기 아내와 관계하게 하여

자식을 낳는 것을 훌륭한 일로 여겼다.

스파르타에서 아이들은 부모 아닌 국가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출산 장려 정책을 고대 국가 관행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센티브를 줄 테니 국가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는 발상은 사실 유사한 철학이라고 할 만하다.

현재 중장년층이 장래 연금을 안정적으로 잘 받기 위해, 혹은 노동력 고갈 위험이 있으니 일할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아이를 낳아달라는 투로 말한다면 젊은이들은 '우리가 애 낳는 노예냐' 하며 반발할 것이다.

그와 같은 청년들의 볼멘소리를 무시하지 말고 주의 깊게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는 것을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은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대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취직하기 힘들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육아는 고단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입시 지옥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차라리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원 없이 즐기며 살겠다는데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럴진대 정부가 출산장려금 250만원을 지급한다고 아이를 낳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저출산 정책 패러다임을 '출산 장려'로부터 '삶의 질 향상'으로 바꾸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더라도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부 결정은 환영할 만하다.


우리보다 일찍 비혼(非婚)과 동거의 확산을 경험했던 프랑스의 경우를 참고해 볼 만하다.

1970~80년대에 젊은이들은 가족 제도의 굴레에서 벗어나 신나는 삶을 산다고 환호했지만, 이들이 40~50대가 됐을 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젊었을 때에는 신났지만, 지금 나이에 저녁에 빈집에 들어가기 싫어 새로운 파트너를 찾으려고

술집과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게 비참하고 지옥 같다'는 인터뷰 기사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결혼과 출산 대신 취미 생활과 상품 소비에 몰입한다고 꼭 자유와 행복을 얻는 건 아니다.

결혼과 비혼 어느 한쪽이 절대적인 답이 될 수는 없으리라.

우리 사회는 아마도 양쪽 상황을 다 경험하다가 새로운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어차피 인구 문제는 장기적 사안이니,

장려금 지급 등의 설익은 정책에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블로그내 같이 읽을 거리 :


'삶은 계속된다'


삶은 계속된다

루트 클뤼거 지음|최성만 옮김|문학동네|384쪽|1만5000원



"수용소 여성들은 아무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2018.11.24 이해인 기자)